<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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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떠난 자와 남는 자(17) 결국 의심했던것이 그대로 맞아 떨어졌구나 하는 허탈감과 함께 분노가 뒤섞여서 장씨는 잠시 태길이를 내려다보며 말이 없었다.그가 천천히 말했다. 『네가 여길 살아나갈 때 어디로 먼저 기어갈지를 우린알지.왜놈 밑으로 가 가랭이 붙들고 아가리질을 하겠지.저놈들이날 밀정이라면서 죽이려고 했다고.그렇지만 봐라.여기 우리 조선사람이 몇 명인지 아냐? 모래알 모여서 강변되는 거다 .네가 네 스스로 칠성판에 못질하는 거지.우리가 한번에 들고 일어나면그때 무슨 일이 날지 아무도 장담 못한다.여기 있는 조선사람치고 죽는 거 무서운 사람없다,너 같은 놈 빼고 말이다.』 장씨가 태길이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넌? 그럴 땐.간도 쓸개도 왜놈한테 다빼 바친 너같은 놈이 우리한테 붙는다고 해도 하룬들 살아갈 수있을 거 같으냐?』 『살려만 주세요.다음부터는 절대,절대….』『죽고 살고가 아냐,지금.더 대라는 말이다.숨기지 말고 무슨 짓을 했는지 있는대로 불어.』 『조씨 그 사람도 아마 나랑 마찬가질 겁니다.그렇지만 노무계 사람들이 우리를 함께 모아놓고 서로 만나게 하는 법은 없으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겨우 짐작만하는 거지요.』 태성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무지랭이처럼 일 나가라면 나가고,잠 자라면 자는 거밖에 없는 우리를 네가 감시해 가면서 뭘 고자질했다는 거냐? 이 어이없는 자식아!』 『저도 모르게, 제가 미쳤지요.어쩌다 그렇게 됐습니다.이따금 술도 사 주고,몰래 유곽에도 데리고가 주고,그러니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요.』 『동포 팔아가면서 왜놈 사타구니에도 올라탔다 그 말이냐.안되겠어.이걸 그냥 둘순 없어.』 중얼거리는 장씨를 밀치며 고서방이 태길이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그가 느릿 느릿 말했다.
『그런데 말이다.가만 듣고 있자니까 말인데,달걀에도 뼈가 있다더니 네 말에 뼈가 있어.길남이가 너랑 한 패라고 했는데 대관절 무슨 일을 어떻게 하기로 했다는 거냐?』 『있는대로 다 말씀 드리지요.뭘 숨길게 있겠습니까.노무계의 가와무라상 이야긴데,길남이도 너랑 함께니까 그런 줄 알라고 하면서 나한테만 비밀 얘기를 했습니다.』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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