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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을찾아서>이승우 소설"미궁에 대한 추측"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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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승우의 소설은 괘씸(?)하다.겁없이 권력의 뱃속을 해부한다.실험대상인 개구리를 다루듯 권력의 출생과 성장을 관찰하고 생리를 탐구한다.그 과정에서 그는 권력이라는 얼굴없는 거대 괴물은 인간이 키워낸 가축임을 발견한다.그리고 권력의 절대권위는 사실은 피지배자들이 부여해준 힘의 집합체라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권력의 권위를 해체해 버린다.이런 관점에서 이승우의 소설은 불온하다.
새로 나온 소설집 『미궁에 대한 추측』(문학과 지성刊)에 실린 8편중 「하얀길」「일기」2편을 뺀 6편이 이 도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카프카의 『성』『심판』을 연상시키는 「선고」는 주인공F가 낯선 나라에 들어가면서 얘기가 전개된다.F는 낮에는 미로를 만들고 밤이면 제비를 뽑아 왕을 선출하지만 하루만에 왕을 죽이고 다시 새로운 왕을 뽑는 그 나라의 이상한 풍습을 의아해 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자신이 왕으로 뽑히고 사형선고를 받았을때 F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추상화된 세상인 미로와 그곳의 지배적인 논리인 권력과 복종의 메커니즘을 필연적인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작가는 여기에서 권력과 복종의 메커니즘이 우리가 만들어낸 상황임을 암시한다.
현실권력의 발생과 생리를 묘사한 우화 「해는 어떻게 뜨는가」에서 작가의 이같은 관점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해가 뜨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풍문이 돌면서 공포에 휩싸인 망구스족은 주술의 힘으로 해를 뜨게 해주겠다는 주술사를 숭상한다 .주술사의 말대로 해는 계속 떴고 부족은 그의 힘을 믿고 따른다.주술사는왕이란 칭호를 얻게 되고 주술사에 대항했던 장로는 추방돼 살해당한다.시간이 지나면서 주술사밑에는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그들은 농기구 대신 채찍 을 들고 같은 부족들에게휘둘러댔다.
그러나 보름이 넘게 폭우로 해가 뜨지 않으면서 주술사에 대한믿음에 금이 가고 결국 주술사는 축출당한다.
주술이 해를 뜨게 한다는 믿음이 권력을 발생시켰다는 메시지는「수상은 죽지 않는다」에서도 이어진다.연극 『독재자 학교』와 유사한 이 작품은 절대권력자인 수상이 사망한 뒤에도 닮은 연극배우가 그의 대역을 하는 상황이 설정된다.그리고 그 연극배우가더 이상 대역이 아닌 진짜 수상으로 돼가는 과정을 통해 권력의실체가 관객이 부여한 배우의 캐릭터일 뿐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사람이 퇴장해도 그 캐릭터는 무대위에 남아 화석이된다.그것이 권력이다.
「동굴」도 이 세 작품과 유사한 메시지를 전한다.다른점이 있다면 여기에서는 저항의 방식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사랑하는여자의 벽화를 그린 죄로 동굴에 갇힌 예술가는 권력에 도전하는젊은 세력의 대표주자에게 창을 꽂는 그림을 그 려 달라는 추장의 요구를 거부하고 죽음을 택한다.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발은나무처럼 땅에 묻혀 있고 팔은 날개짓하는 자화상을 남긴 채.
이 자화상이 상징하는 상황은 다분히 비관적이다.몸은 권력과 복종의 메커니즘에 묶여 있으면서 종교적 초월을 꿈꾸는 분열상황이다.이같은 존재의 균열은 저주받은 예술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작가는 『예술가를 저항의 방식으로 내세운 것은 양극단의 모순을 껴안으려는 노력이야 말로 우리의 삶을 한방향으로 가속화하는지배와 복종의 메커니즘에 대한 진정한 저항이 될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南再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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