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침묵 깨고 맞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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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은 5일 김용철 변호사가 제기한 의혹에 맞서 그 주장의 진위와 사실관계 등을 정리한 25쪽 분량의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사진=김경빈 기자]

"근거 없는 폭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김용철 변호사의 각종 의혹 제기에도 그간 '침묵'을 고수해 온 삼성이 5일 맞대응을 통한 정면 돌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내심을 갖고 지켜봤지만 온갖 억측과 오해만 더 키웠다는 판단에서다.

삼성 관계자는 "그룹의 이미지가 훼손되고 정상적인 경영 활동과 글로벌 사업이 심각하게 위협 받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삼성은 김 변호사의 '양심의 발로에 따른 폭로' 주장에 대해서도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일축한다. 그룹 고위 임원은 "2004년 퇴직 뒤 최근 3년간 고문변호사로 매달 2000여 만원씩을 받을 때만 해도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다가 고문 계약이 끝날 무렵에 뜬금없이 '삼성 의혹'을 터트리겠다고 전해 왔다"고 밝혔다.

김용철 변호사가 '떡값'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법조계는 대체로 "증거도 없이 의혹만 부풀린다"는 분위기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김 변호사가 변죽만 울리고 누구에게 얼마를 줬는지 밝히지 않아 검찰에 대한 불신만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명단이 있다면 공개하는 게 불필요한 의혹 확산을 막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이곳저곳에 흘리며 여론의 추이를 살피는 것보다는 자기가 가진 내부 정보가 있다면 밝힌 뒤 수사를 요구하는 게 법률가다운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정성진 법무부 장관도 2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직접 고소나 고발을 해 제대로 의혹을 밝혀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재정경제부도 이날 '이해관계가 맞물린 재경부는 (삼성의 로비) 규모가 더 컸다'는 김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반박 성명서를 냈다. 재경부는 "개별 기업과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정책을 수립.집행하지 않는다" 며 "그의 근거 없는 주장은 재경부에 대한 국민들의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에버랜드 사건 조작.축소 여부=위증을 사주하고 참고인들을 빼돌리는 등 재판을 방해했다는 주장에 대해 삼성 측은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무려 3년 반에 걸쳐 시민단체와 언론의 눈길이 쏠린 가운데 방대한 검찰 수사가 이뤄진 재판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겠나"라는 게 삼성의 입장이다.

삼성 관계자는 "에버랜드 1, 2심 재판에서 피고인과 변호사들은 검찰의 증거 제시에 거의 대부분 동의했고 대체로 검찰 입장대로 사실 관계가 확정됐다"며 "다만 법률적 해석과 판단에 대해서만 검찰과 피고인 변호사들이 의견을 달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증인을 어떻게 빼돌려 수사를 방해했는지 (김 변호사가) 분명히 밝혀줄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재판장에게 30억을 주라는 지시 여부="에버랜드 재판장에게 30억원 갖다 주라는 지시를 거절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이라는 김 변호사의 주장은 시점이나, 논리적으로 모두 맞지 않다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김 변호사의 주장대로라면 2003년 말부터 이듬해 4월까지 업무에서 '배제'됐는데, 2004년 3월 말에 시작된 에버랜드 1심 재판에서 재판장에게 30억원을 가져다 주라고 '은밀하게' 지시를 받았다는 게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변호사는 최근 '한겨레21'과의 인터뷰 (10월 29일)에서 "2003년 말부터 대선 자금 수사가 진행되는 6개월 동안 업무에서 배제됐다. 나하고는 의논을 안 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법조인에게 '떡값' 제공했나=삼성은 검사나 판사를 상대로 떡값이나 휴가비 등을 돌린 적이 없으며 김 변호사에게 그 같은 일을 지시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만일 김 변호사가 법조계 인사들을 만나 술을 마시거나 식사를 했다면 이는 전적으로 '사적인 자리'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삼성 측은 "김 변호사가 현직 검사 출신으로 처음 입사한 케이스여서 예우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며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로비를 지시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변호사는 S급 핵심 인재인가='나는 수퍼(S)급 인재'라는 김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삼성 측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가 법무팀에서 일한 것은 맞지만 자금 관리 업무를 맡아본 적이 없을 뿐더러, 당시엔 운영팀장이라는 직제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 S급 인재는 세계적 엔지니어나 마케팅 전문가 등에 해당되는 것이지, 김 변호사 같은 '스태프'는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50억원 차명계좌에 대해=차명계좌에 대해 삼성은 "삼성 임원이 김 변호사의 승낙을 얻어 개설한 개인적인 위임 통장"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차명계좌는 김 변호사가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에서 일할 당시 동료가 그의 양해를 얻어 개설해 놓은 통장이라는 것이다. 삼성 측은 "김 변호사가 퇴직 후에도 해마다 이 통장에서 발생하는 세금을 건네받아 자신이 대신 납부해 왔기 때문에 이 돈의 존재를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표재용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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