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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터뷰] 한나라당 공천심사 참여 이문열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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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나라당 공천 심사작업에 참여 중인 소설가 이문열씨는 매우 진지한 모습이다. 최근의 강릉 지역 공천신청자 면접토론에서 적어도 기자가 본 바로는 1시간30분 내내 꼼꼼히 메모해가며 자리를 지킨 위원은 李씨가 유일했다.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오래 자리를 비우거나, 휴대전화 통화를 하고, 심지어는 자기들끼리 밀담을 나누는 다른 심사위원들과 대조적이었다. '건전한 보수는 지켜져야 한다', 또 '보수가 대안으로라도 살아있어야 한다'며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 제의를 수락했던 그를 여의도에서 만났다.

-실제 공천 작업을 해보니 어떻습니까.

"최종 단계에 오니 으스스해지고 무서워져요. 정치생명이 달린 신청자들의 반응이 격렬해져요. 지원자 1천1백여명 가운데 2백명 조금 넘게 공천하고 나머지와는 원수가 되는, 크게 밑지는 장사 같아요."

-로비가 많았습니까. 사천(私薦) 시비도 있던데.

"뇌물 같은 로비는 아니고요. 애소형.읍소형 방문자가 있어요. 상상 못할 정도의 비중 있는 정치인을 만나면 당황스럽고 부담됩니다. 공천에서 떨어지면 사천.밀실 주장을 하는 모양인데 지도부의 주문이 있거나 감춰진 시나리오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아요."

-한나라당의 정체성이 반영된 공천이 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받아들일 사람을 정하는 영입기준이 있고, 반대로 배제의 기준이 있잖아요. 이 두개가 충돌하는 경우가 생겨요. 저번에 아주 불만스러운 느낌을 토로했더니 내가 '한나라당 차라리 자폭하라'고 말했다고들 보도가 나갔어요. 사실은 당에 대한 불만뿐 아니라 제 개인에 대한 불만이기도 해요. 각종 정보 부족이나 메커니즘에 대한 지식이 없어 마지못해 동의할 경우엔 참 속상해요. 현실 정치의 미끈거림에 빠져든 기분도 들고…. 한나라당 이미지 개선과 정체성 확보가 부딪칠 때도 헷갈리고 곤혹스럽습니다."

(이문열씨는 지난 4일 대구 면접토론 후에도 이 같은 감정의 앙금 때문에 집에서 혼자 폭탄주를 마셨다고 한다. 지난주 기자들을 만나 당에 대해 쓴소리를 내뱉은 날에도 그는 귀가해 과음했다. 다음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는 "다 보기 싫어서 안 나간다, 열받아서 술먹고 뻗어버렸다"고 말했다.)

-공천 신청자들의 면면에 보수를 지켜낼 만한 재목들이 있습니까. 더불어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예상 의석도 한번 말씀해보시지요.

"솔직히 마음이 밝지는 않아요. 인재풀이 이 정도인가 해서요. 전망은 숫자로 얘기하면 야박하니 비관적이라고만 해두지요. 그런데 '바꿔' '개혁'소리는 이제 싫증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현 정권을 포함해 네개의 정권째 '바꿔' 노래를 계속 부르고 있어요. 노태우 개혁은 의심스럽다 하더라도 YS.DJ 개혁은 진정성이 있잖아요. 노무현 정권도 1년 동안 개혁을 주장했고…."

-그와 관련해 과거 정권에서의 경력 등에 대해선 어떤 기준으로 심사를 하고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사람의 예로 답하겠습니다. 정형근 의원이 단수 후보로 추천된 것과 관련, 저는 그 심사 자리엔 없었어요. 하지만 나도 찬성했을 것입니다. 첫째 鄭의원은 혼자 지원해 상대가 없어요. 둘째 권력기관 근무 때 인권 문제가 입증된 것이 없어요. 실체가 있었으면 5년간 DJ 저격수로 활동하는 동안 다 밝혀졌을 겁니다. 그리고 김영일 의원인데요. 金의원이 개인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고 당의 사무총장으로 집행 역할만 했다면 그가 옥중출마를 할 경우 공천을 줄 수 있다고 개인적으론 봅니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최종 결정자인 유권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중요한 이유가 편파성 때문인데 4대 기업에서 받은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5백억원대 0원이라는 것을 나는 죽었다 깨도 못 믿겠어요. 지난 대선 막바지에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로 시너지 효과를 얻었고, 盧후보가 계속 지지율 1위를 달렸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재벌들이 바보가 아닌데 이회창 캠프에 1백여억원을 찔러주고 당선이 유력한 盧후보 측엔 0원이다? 이게 수사입니까. 거칠게 추정해도 비슷하거나 반은 넘을 거예요."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들으면 시원하겠지만, 시대의 흐름과는 다른 이야기라는 의견도 있을 텐데요.

"한나라당의 업보가 물론 있어요. 분단체제의 모순과 산업화, 개발독재의 그늘을 물려받았지요. 느리고 늙고 둔한 정당이기도 해요. 하지만 차떼기 이미지 조작은 굉장히 소름끼치고 기분나빠요. 차에 실었다고 차떼기라니요? 그건 제대로 된 용어가 아닙니다. 어찌 보면 절묘하지만 섬뜩해요. 그것이 나를 분개하게 합니다. 지난 1년을 돌이켜 보세요. 재신임과 5백억원이 동시에 터져 나오고…. 시나리오보다 절묘한 우연도 있지만 나는 다르게 봅니다."

-최근 총선연대가 낙천 대상자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이를 참고할 생각입니까.

"참고합니다. 하지만 '역참고'입니다. 적어도 저는 거기 이름이 오른 사람은 우선 배려할까 싶기도 해요. 사실 총선연대는 열린우리당의 준조직이거나 산하 단체라고까지 할 수도 있는, 아주 유착된 외곽 조직 아닙니까. 왜 매일 방송에서 낙천대상 소식을 몇시간씩 봐야 합니까. 철새라면 야당에서 여당 간 정치인이 진짜 철새 아닙니까. 여당서 야당 간 사람들만 철새 취급했잖아요. 한나라당은 32명인데 열린우리당은 7명이지요? 파렴치성이 기준이 된다면 대선 당시 거짓말했다가 유죄 판결 받은 의원은 왜 뺍니까. 개인비리.당적이동 등과 관련해선 우리 나름대로 이미 배제기준이 있으니 그쪽 것 볼 필요 없어요."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이 된 것이 적어도 '소설가 이문열'에게는 손해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요.

"처음 제의 땐 거절했어요. 그런데 지인들이 '다른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보수세력이 대안으로 남을 수 있게 하려면 수락해야 한다고 해서 섬뜩했어요. 여유부릴 때가 아니라더군요. 다시 생각해 봤어요. 독일 나치의 집권 후 당시 지식인들이 가장 후회한 부분이 '미리 막을 수 있었는데…'하는 것이었습니다. 퇴역 하사관 한 명이 실업자 몇명과 뮌헨 지하실 맥주집에서 나치를 결성하고, 또 힌덴부르크 대통령을 앞세워 세력을 불릴 때 방관했던 겁니다. 그 결과 토마스 만 등 몇명이 겨우 외국으로 망명할 수 있었고, 독일에 남은 대다수는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시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런 후회는 하지 말자. 나중에 한을 남기지는 말자'이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포퓰리즘과 잘못된 전체주의에 대한 불길한 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틀러와 괴벨스가 이용한 것이 광장입니다. 이게 재래식 광장이고,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새 광장이 있습니다. 새 광장은 이미 악용하는 자들에게 선점당한 상태입니다. 광장이 긍정적 기능을 하면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나 로마의 포럼이 되지만 잘못되면 나치 돌격대의 베를린 광장이나 중국 홍위병의 천안문 광장이 됩니다. 광장은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어요. 첫째는 집단성입니다. 물론 이 속에서 민주주의의 원리가 많이 나왔지만 집단 최면이나 히스테리, 집단 피학.가학증과 같은 부작용이 있습니다. 또 대면성이라는 것인데요. 서로 얼굴을 맞댔다는 생각에서 결정에 모두 동의했다고 착각하게 합니다. 공개성 때문에 평등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눈으로 다 봤고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뭘 보고 뭘 알았다는 것입니까. 준비된 소수에 의해 조작되고 오도된 것일 수 있습니다. 새 광장은 속도와 공간의 제약도 받지 않습니다. 인터넷 광장은 수십만.수백만을 간단히 동원할 수 있어요. 매우 불길합니다. 파시스트의 책 화형식과 같은 전형적인 전체주의 행태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거의 직접적 폭력은 지금 사이버 테러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보수진영의 대응에 대해서도 생각해 둔 것이 있는지요.

"걱정스러운 것은 보수의 폭력이 더 무섭다는 거예요. 우익의 과격한 반격이 나올까봐 걱정이에요. 대신 인터넷 등에 보수의 영역을 확보하는 방법 등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디지털 포퓰리즘이지만 대의민주주의에서 부족한 요소인 대중의 참여를 인터넷 등으로 보충하면서 디지털 참여주의로 가면 새 광장도 정화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펴고 실현하는 방법으로 직접 정치를 할 생각은 없습니까.

"그게 수지가 안 맞습니다(웃음). 소설쓰기와 바꿔서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정치야말로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봐요. 소설가의 길을 걸어온 나로선 이번 생에선 늦었다고 생각해요. 나의 진정을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인데 이 일 마치고 몇년 틀어박혀 소설을 쓰고 있으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 보수에 서게 됐습니까.

"내가 문단에 나왔을 때 '사람의 아들'이나 '새하곡'을 본 사람들은 나의 진보성과 개혁성에 기대했던 것 같아요. '사람의 아들'은 386세대의 의식교재로 쓰였다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가 저쪽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문단에 나온 2, 3년간은 밀월 기간이었어요. 그러다 1982년 이후 공격이 시작되더군요. 나도 대응하면서 개인적 저항감이 생겼어요. 87년 이후엔 내가 외롭기 짝이 없는 신세가 됐어요. 이미 문화권력은 저쪽이 확보한 상태였어요. 술자리에선 나와 같은 얘길 하던 사람들이 방송이나 신문에선 딴 소릴 하는 거예요. 그 때 나까지 옮겼으면 이쪽엔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앉아있는 김에 고집세게 앉아있다 보니 강한 반격과 강한 대응이 오갔어요. 공산주의자 이야기를 쓴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라는 책이 있는데 나는 강철만 단련되는 것이 아니라 보수도 단련된다고 봐요. 언젠가 '보수는 어떻게 단련되는가'를 쓸까봐요(웃음)."

만난사람=김교준 논설위원
정리=이가영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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