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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방한 때 북 비난 연설 DJ가 방송 중계·보도 막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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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존 볼턴(사진) 전 주 유엔 미 대사는 "2002년 방한해 북한 비난 연설을 했으나 김대중 대통령(당시)이 방송 중계와 보도를 막았다"고 1일 낸 자서전 '항복은 옵션이 아니다(Surrender is not an option)'에서 밝혔다. 그는 또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한이 무력도발을 하면 시커먼 폐허가 될 것"이라고 극언할 만큼 김정일 정권에 증오심을 품었다면서 이런 그의 감정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06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선출 당시 끝까지 반대한 유일한 나라는 일본이었다고 처음으로 확인했다. 다음은 자서전 요약.

◆부시의 뿌리 깊은 김정일 혐오=부시 대통령은 2002년 5월 31일 방미 중인 핀란드 대통령에게 "북한이 만일 무력을 사용하면 연기가 나고 시커멓게 탄 폐허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3년 10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도 "김정일은 음식이 담긴 접시를 마구 내던지는 어린애 같은 자"라며 "어른이 접시를 주워 상 위에 올려놓는 순간 김정일은 또다시 접시를 내던진다. 따라서 어른들은 합심해 '접시는 상 위에 놓는 것'임을 김정일에게 깨우쳐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볼턴 연설 보도 막아=2차 북핵 위기의 시작은 2002년 6월 10일 미 중앙정보국(CIA)의 무기 정보-비확산-군축 국장인 앨런 폴리가 내게 "파키스탄의 A Q 칸이 (북한에) 우라늄 농축 요리책을 써줬고 북한은 관련 물질을 사들이고 있는 것 같다"고 알려줌으로써 시작됐다. 나는 이 정보를 한국에 알리기 위해 8월 29일 서울을 찾았다. 도착한 날 아침 북한을 비난하는 연설을 했으나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 방송사들이 이를 생중계하거나 보도하지 못하게 막은 사실을 마이클 그린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발견했다.

나는 이태식 외교부 차관보(당시.현 주미대사)에게 북한의 우라늄 개발 정보를 브리핑했다. 북한의 강력한 변명자(Apologist)인 그는 내가 보고를 마치기도 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 의무 완료 시한 산정과 관련해 북한 편을 들었다. 또 진정한 북한의 변명자인 임동원 통일부 장관(당시)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인 후에도 "북한이 협상할 의지를 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반 총장 끝까지 반대=2006년 6월 25일 유엔 사무총장 선출 예비선거(1차)에서 미국 대표로 나선 나는 반기문 후보에게 찬성표, 다른 세 후보에게 반대표를 던졌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그 달 초 반 장관을 미국이 밀 유일한 후보로 낙점한 뒤였다.

결과는 반 장관이 12표로 1위였으나 2위 후보가 10표나 얻으며 선전해 놀랐다.

네 후보 전원에게 찬성표를 던진 중국에 반 후보만 밀라고 설득해 9월 13일 2차 투표에선 반 후보가 찬성 14표, 반대 1표로 급부상했다. 나는 반대표는 일본 것임을 직감했다. 보름 뒤 3차 예비투표에서도 반 후보는 찬성 13표(기권 1표)에 반대 1표를 얻었다. 다음날 나는 오시마 주 유엔 일본 대사를 만나 "반 후보에게 반대했나?"라고 물었고, 그는 부인하지 않았다. 나는 "일본이 외톨이가 되기 싫으면 반 후보를 찍어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일본은 찬성 대신 기권을 택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10월 2일 반 후보는 찬성 14표, 기권 1표로 최종 당선됐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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