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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파격·조화 … 한복 덧조끼에 담긴 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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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배자는 한복 덧조끼다. 이홍순 작가가 재현한 조선말기 배자들이 한옥 대청에 걸려있다.

배자는 한복 덧조끼다. 보온 혹은 멋내기를 위해 저고리 위에 겹쳐 입는다. 옛 사람들의 지혜와 멋이 오롯이 담긴 평상복이다. 평상복이라 명분이나 격식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모양을 낼 수 있었다.

‘아름지기’(이사장 신연균)가 서울 안국동 한옥서 ‘생활 속 아름다움-우리옷, 배자展’을 열고 있다. ‘아름지기’는 2004년부터 해마다 쓰개, 목공예, 상차림 등 우리네 의식주를 주제삼아 전통공예 전시를 해왔다.

평소 사무공간으로 쓰는 한옥이 전시공간이 됐다.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오밀조밀한 마당 건너 통유리창에 통일신라 배자가 날개 펼친 듯 걸려 있다. 한복 디자이너 이홍순 씨가 재현한 ‘삼색 여자 반비’다. 일본에 소장된 유물형태를 기본으로 하여 당시 유행했던 페르샤 풍의 풍부한 색감과 독특한 질감을 표현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반비(半臂)는 배자의 한 종류다.

배자의 전통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고구려 고분벽화인 삼실총의 귀족남자, 안악 삼호분 묘주의 부인에게서 배자 입은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대청엔 이홍순 작가가 재현한 조선말기 배자들을 주루룩 걸어뒀다. 흔히 한옥 대청이라 하면 겨울에 안방에서 문간방 건너갈 때 시린 발끝으로 종종거리는 곳을 떠올린다. 여기 담비털, 토끼털 댄 명주 배자가 걸려 있으니 마음은 절로 따뜻해진다. 도배 장판만으로도 정갈한 안방에 여자 배자를 걸어 두니 안방마님을 위한 자연스런 집치레가 됐다. 유선희 작가의 누비 배자다. 따뜻하라고 솜을 두고 누빈 것도 있지만 줄무늬 효과를 내기 위해 누빈 것도 있다. 규칙적인 직선의 반복은 사대부가의 절제와 규범을 보여준다. 벽장 속엔 역시 한땀한땀 정성스레 누빈 백일저고리, 배냇저고리를 뒀다. 문간방에는 색동 고운 어린이 배자를 걸었다.

집구경, 전시구경을 하며 한바퀴 돌고 나면 오늘날의 배자를 만난다. 독일 디자이너 율리 슈나이더는 조선 말기 배자 안에 모피를 덧댔던 데 착안해 모피를 겉감으로 배자를 디자인했다. 옆여밈은 보랏빛 끈으로 고름매듯 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김은화 작가는 배자 블라우스를 지었다.

전통과 현대, 생활과 예술이 만난 이번 전시는 22일까지 볼 수 있다. 특히 7일에는 경원대 조효숙(의상학과) 교수가 전시작품을 직접 안내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조 교수는 “배자 속에는 현대인을 감격시킬 요소가 너무도 많다”면서 “안정된 비례에서 오는 품격 멋, 간결한 디자인에서 오는 놀라운 파격의 멋, 모피와 비단, 명주와 모시 같은 전혀 안 어울릴 것만 같은 다양한 소재를 서로 어울리게 디자인한 조화의 멋, 겉감과 안감의 경이로운 천연 배색이 풍기는 자연의 멋이 그렇다”고 설명했다.

아름지기 신 이사장은 “우리 옷의 아름다움이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음을 살펴보며 현대인들도 일상생활에서 배자를 아무런 불편함 없이 손쉽게 입을 수 있음을 공감하는 기회가 되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02-733-8375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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