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도시를 만든다 ④·<끝> 항공 클러스터로 뜨는 사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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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기술자들이 경남 사천 공장에서 미 해군의 대잠수함 해상초계기(P-3)의 성능 개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천=심재우 기자]

지난달 27일 경남 사천시 진사산업단지 내 항공우주박물관. 사천시가 이 지역 주민들에게 항공우주산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4년 전부터 매년 기획한 '항공우주 엑스포'가 열리고 있었다. 하늘에선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기본훈련기 KT-1과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등이 에어쇼를 벌이며 흥을 돋웠다. 시민 박기선(36)씨는 "국산 1호 항공기인 '부활'이 1953년 사천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KAI의 본사가 있는 도시인 만큼 사천시민이 느끼는 자부심은 남다르다"고 말했다. 김수영(62) 사천시장은 해외 출장을 갈 때면 T-50 모형을 챙겨 간다. 외국에서 만나는 인사들에게 "이 초음속기가 사천의 명물"이라며 선물로 건넨다.

사천이 한국 항공우주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국내 유일의 완제품 항공기 생산업체인 KAI를 중심으로 국내 항공우주 클러스터가 형성되고 있다. 여기에 사상 최대의 조선 호황으로 고용창출 효과가 큰 대형 조선소까지 터를 잡으면서 하늘과 바다를 아우르는 기업도시로 거듭나는 중이다.

도시가 커지며 살림살이가 나아지자 주민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사천읍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박정옥(41)씨는 올해 7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박씨는 "공단 입주 기업들이 늘면서 회식 기회가 잦아지고, 그러다 보니 장사가 잘된다"며 "사천읍내 음식점이 늘고 있는데도 매상은 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택시기사 한재승(42)씨는 "인구가 늘면서 택시 승객도 많아지고 있고 이 일대에 5000여 가구의 아파트가 분양을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사천 경기는 최고조"라고 말했다.

◆KAI가 중심이 된 항공도시=이미 KAI 주변은 사천공항, 공군비행훈련단, 한국폴리텍항공대학, 경상대 항공공학과 등 항공 관련 인프라와 네트워크가 갖춰져 있다. KAI는 99년 삼성항공과 현대우주항공, 대우중공업 항공사업부 등이 통합되면서 설립됐다. KAI는 국방부에 납품하는 것만으로는 회사가 크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2005년 본사를 서울에서 사천으로 옮겼다. 한곳에 역량을 집중해 생산효율을 끌어올린 뒤 수출로 살길을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올 8월 기본훈련기 KT-1 55대를 터키에 수출하는 등 해외시장 진출에 잇따라 성공했다. 이곳에는 항공 관련 업체 38개사에서 4700여 명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사천시는 항공우주 클러스터를 성공시키기 위해 진사지방산업단지 내 40만1000㎡를 매입했다. 이를 공장 부지로 개발해 항공기 부품소재 분야 22개 업체를 선정해 착착 입주시키고 있다. 최대 50년에 걸쳐 평당 월 4500원에 임대하는 좋은 조건이다.

◆외국기업도 '웰컴'=담배 '던힐'로 잘 알려진 BAT의 사천공장은 2002년에 지어졌다. BAT가 1억2000만 달러를 투자해 세운 이 공장에선 지난해 9월까지 500억 개비의 담배가 생산됐다. 이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경남도와 사천시 외자유치 공무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상경했다. 당시 산업자원부가 '국민 건강을 해치는 업종'이므로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혜택을 줄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결국 법인세를 감면받는 등의 특혜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공장설립 허가를 받았고 지금은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 한몫하고 있다. 270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는데 이 중 90%가 이 지역 출신이다.

정민희(27) 대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마음을 바꿔 고향에서 일할 수 있는 이 회사를 택했다"면서 "공장이 늘어 일자리가 많아지면서 객지로 나간 동창까지 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회사가 내는 세금으로 우리 고장 살림살이가 점점 나아지고 있어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사천에는 BAT코리아 말고도 스카니아코리아.한국경남태양유전 등 16개 외국인 투자기업이 입주해 있다.

◆조선소도 유치=진사산업단지에 있는 SPP해양조선 심종화 상무는 2005년 초 사업 계획을 발표하기 위해 사천시장실을 방문했다. 김수영 시장은 모든 간부를 불러 브리핑을 듣게 한 뒤 "지원팀을 따로 만들지 말고 전 공무원이 지원팀이 돼 적극 도와주자"고 말했다. 심 상무는 "2500여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말에 참석자 모두 잔뜩 고무돼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SPP 사천 조선소는 도크와 바다를 가로막는 도크게이트를 해안도로로 사용하고 있다. 건조가 끝난 선박을 진수할 때를 빼고는 도크게이트가 자동차 도로인 셈이다. 심 상무는 "경남도가 도크게이트를 도로로 사용해도 좋다고 유권해석을 서둘러 내 주는 덕분에 도크 건조 시기를 앞당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SPP해양조선이 사천에 입주하면서 미래조선 등 20여 개의 협력업체도 함께 들어왔다. 조선용 블록 제조업체인 삼호조선은 2008년 말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사람들이 모이면서 올 8월엔 대형 할인마트인 '삼성홈플러스 삼천포점'이 문을 열었다. 최현준 점장은 "지금까지 예상 매출액보다 15% 정도 웃돌았다"며 "쇼핑객 한 명이 평균 2만5000원어치의 물건을 사 부산(3만5000원)에는 못 미치지만 점점 액수가 많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사천=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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