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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실록소설 "여순병란"펴낸 李 泰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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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지리산 빨치산의 실상을 기록한 『남부군』을 펴내 화제를 불러모았던 李 泰씨(71)가 여순반란사건을 다룬 실록소설 『여순병란』(청산刊)을 냈다.여순반란사건은 6.25전쟁을 제외하면 제주도 4.3사건과 함께 해방이후 최대의 참극으로 꼽히지만 이념의 장막에 가려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던 사건이다.
『4.3사건과 여순반란사건의 공통점은 자기가 왜 죽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고 죽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그만큼 좌우 이념대립의 양상이 광적이었다는 뜻이겠지요.현장을 취재한 한 외신기자는 집단적 히스테리의 발작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였으니까요.』 李씨는 이같은 좌우 이념대립의 병적인 행태는 일제 식민지에서 갓벗어난 우리민족으로서는 피할수 없는 비극이었다고 한다.
정복당한 경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정복자로서의 윤리나 절제를 기대할수는 없다는 것이다.
『승자는 패자에 대해 아무런 제한없이 감정이 폭발하는대로 행동했지요.쥐꼬리만한 권력도 황소꼬리처럼 휘둘러 댔으니까요.강한자에 대해서는 한없이 비열하면서도 약자에 대해서는 가혹하기 이를데 없었던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양상이었습니다.
이같은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차분한 반성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봅니다.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 사건들에 대한 반성적 조명이 이루어져야겠지요.』 『여순병란』은 소설의 형식을취하고 있지만 극히 일부를 빼고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이중 몇몇 이야기는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과 달라 흥미를 끈다.그 대표적인 것이 여순반란사건이 남로당의 지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부분이다.
李씨는 『사건당시 14연대에는 남로당 소속 초급장교가 16명이 있었는데 그중 15명이 반란사병들에 의해 사살됐다』면서 『이 사건이 남로당의 지령에 따라 일어난 것이라면 이들이 처형당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李씨는 여순반란사건을 돌출적인 사건이라고 한다.이 사실은 한때 남부군의 일원이었던 李씨가 남부군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확신하게 된 것이다.여순반란사건에 가담했던 국군 사병중 일부는李현상의 휘하로 들어가 남부군의 주력부대인 승리 사단을 구성한다.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는 자신의 불운때문에 죽기전에 기록을남겨야겠다는 의무감으로 6개월을 매일 12시간씩 이책에 매달렸다는 李씨.덕분에 허리디스크를 얻어 30년동안 써오던 일기도 쓰기 힘겹다는 그는 『아무리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안돼 있으면 무용지물』이라고 말한다.
李씨는 현재 야당활동을 하며 69년부터 써오기 시작한 일기를책으로 내기위해 정리작업을 하고 있다.
〈再〉 〈사진=張文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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