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캐피털사 부실대출 백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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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A카드사는 2001년 말 회사원 K씨(36)가 현금서비스 등으로 빌린 1천2백만원을 갚지 못하자 대환대출을 내줬다. 보증을 선 K씨의 부인과 직장 동료 등 두 사람이 모두 신용불량자였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민등록증이나 재직증명서 등 보증인의 신원을 증명할 서류도 전혀 없었다. 신청서는 카드사 여직원이 대신 작성했다. 그런데도 카드사는 "빚을 갚겠다는 K씨의 의지가 분명하다"는 담당자의 의견을 근거로 신청 당일 대출을 승인했다. 그러나 K씨는 결국 빚을 갚지 못했고, 카드사는 지난해 6월 K씨에 대한 채권을 자산관리공사에 부실채권으로 팔아넘겼다.

"해도 너무했다." 국내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을 인수해온 자산관리공사가 카드.캐피털사의 영업 행태에 대해 내리는 평가다. 지난해 말 신용불량자는 3백72만명. 이 중 2백30만여명이 카드.캐피털사에서 만들어졌다.

◇명함 한장 믿고 내준 6백만원=B캐피털사는 지난해 소형 승용차를 산 L씨(51)에게 6백44만원을 할부금융으로 대출했다. 근거 서류는 인테리어 회사 이사라며 신청자가 건네준 명함 복사본 한장이 전부였다. 채무자의 직업.주소 확인이나 신용조회조차 하지 않았던 캐피털사는 할부금이 밀린 뒤에야 부랴부랴 채권 회수에 나섰으나 사람도, 차도 찾을 수 없었다.

지난해 7만6천건의 개인 부실채권을 인수한 한 기관은 연말까지 채무자들에게 채무안내장을 보냈으나 이 중 2만건을 반송받았다. 고객 주소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부실채권 인수기관으로 넘어온 채무자 중 두곳 이상의 금융회사에 빚을 진 다중 채무자의 비율은 90%에 가깝다. 대출 때 신용조회만 한번 했어도 부실채권을 예방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은행.카드.저축은행 등 24곳에서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사람이 카드사로부터 신규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한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몇년 전 제2금융권의 부실채권을 인수했으나 엉터리 고객정보 탓에 제대로 채권을 회수하지 못해 손해를 봤다"며 "앞으로 카드.할부금융 부실채권에는 손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성년자.사망자에게 대출=자산관리공사는 지난해 카드사로부터 인수한 개인채권 88만건 중 2천여건을 카드사로 되돌려보냈다. 법적으로 돈을 빌려줄 수 없는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대출이었기 때문이다.

자산관리공사 관계자는 "카드사는 단순한 실수라고 주장하지만 고객 이름 바로 옆에 주민등록번호가 적혀 있었다"며 "심지어 사망한 사람에게 대환대출을 해준 경우도 있어 해당 회사에 되돌려 보냈다"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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