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1백달러 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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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자리를 돈으로 바꿔칠 수 있다면 얼마면 될까.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 중인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답(?)이 나와 있다.

딘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맞붙어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면서 '2백만명×1백달러=부시 퇴출'이란 산식을 며칠 전부터 대문짝만하게 싣고 있다. 부시가 백악관 주인으로 계속 남는 꼴을 도저히 못 보겠다고 생각하는 유권자 2백만명이 자신에게 1백달러씩만 후원해주면 부시를 반드시 꺾어 미국을 바꿔놓겠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1백달러의 혁명'이다.

초반 열세로 딘은 선거자금 고갈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 푼이 아쉬운 형편이다. 낙마가 목전이라는 분석도 있다. 2억달러 등식은'단순무식'한 메시지로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딘 진영의 막바지 안간힘으로 보인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레이스를 보도하는 미 언론에는 돈 냄새가 진동한다. 대세론에 올라탄 존 케리 후보의 경우는 도박에 성공한 케이스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도는 딘에 훨씬 못 미쳐 선거자금은 곧 바닥을 드러낼 처지였다. 그는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매칭 펀드(matching fund)'의 포기 여부를 놓고 힘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수령에 동의하면 개인이 헌금한 금액을 1인당 2백50달러 한도 내에서 정부로부터 또다시 지원받을 수 있지만 후보 자신이 선거에 투입할 수 있는 돈은 5만달러로 제한된다. 급전이 필요했던 케리는 자신의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은 6백40만달러를 선거운동에 쏟아 넣기로 하고, 매칭 펀드를 포기했다. 빌린 돈으로 첫 경선지인 아이오와와 뉴 햄프셔 두 주에 집중적으로 TV 광고를 퍼부었다. 여기서 이기면 후원금이 계속 들어올 것이고, 이 돈으로 광고를 계속하면 지지도가 상승세를 타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도박은 적중했다.

반면 지난해까지 이미 4천1백만달러의 거액을 모금해 느긋한 입장에 있던 딘은 후보 1인당 4천5백만달러로 돼 있는 경선자금 지출 한도에 묶이지 않기 위해 매칭 펀드를 스스로 거부했다. 전국적 후보라는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그는 처음부터 전국 광고에 큰 돈을 쏟아 부었고, 그 탓인지 두 주에서 초반 승기를 놓쳤다. 그후 지지도 하락, 후원금 격감, 광고 축소, 지지도 추가 하락이라는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돈만 갖고 따지면 아무도 부시를 따라갈 수 없다. 이미 그는 지난해 1억3천만달러를 모금했다. 지난해 말 은행 잔액 기준으로 민주당 경선 후보 상위 주자 5명의 잔액을 다 합한 액수의 7배를 선거자금으로 예치해 놓고 있다. 돈이 대통령을 만든다면 확실한 사람은 부시다. 그러나 돈만 갖고 되는 건 아니다. 본선에서 케리와 맞붙으면 어렵다는 여론조사가 잇따르고 있다.

정당에 기부하는 조건으로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던 미국의 소프트 머니는 지난해 11월부터 금지됐다. 대신 후보에게 기부하되 연방 선관위가 모금과 지출 내역을 철저히 관리하는 하드 머니의 기부 상한선은 1인당 1천달러에서 2천달러로 상향 조정됐다.

딘이 호소하는'1백달러 혁명'의 성공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현재까지 모금액은 목표액의 2백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인터넷을 통한 소액 헌금이 활성화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큰손들이 좌우해온 미국의 선거자금 문화에 인터넷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1백70년 전 프랑스의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찬양했던 미국 풀뿌리 민주주의의 전통이 21세기를 맞아 부활하고 있는 것일까.

배명복 순회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