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영화 관객 1000만 시대] 나는 이렇게 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편당 관객 1천만명 시대를 받아들이는 영화인들의 반응이 환호 일색만은 아니다. 제작 일선에 있는 영화인, 특히 메이저 제작사 관계자들은 장밋빛 미래를 예시하는 거라며 들떠 있다. 반면 바깥에서 지켜보는 평론가나, 소규모 제작사 관계자들은 '부'의 편중과 쏠림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의 서로 다른 의견을 들어본다.

*** 심재명 (명필름 대표) - 은폐 역사 밝혀 이슈화

'쉬리'이후 한국영화가 관객들에게서 쌓은 신뢰가 '실미도'라는 구체적인 영화로 폭발한 것이다. 하드웨어면에서는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의 증가를 비롯, 유통.배급 시장의 활성화가 뒷받침된 결과다.

내용적으로는 우리의 어두운 현대사, 직접 경험을 했건 안했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는 과거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이 먹혀들었다.

'반지의 제왕'은 우리 얘기는 아니지만 '실미도'는 우리 얘기이지 않은가.지금은 (사회적) 이슈를 만들지 못하면 속칭 '대박' 영화가 못된다. '실미도'는 은폐된 역사를 드러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슈를 만들어냈다. 허구를 다룬 영화라면 양상이 굉장히 달랐을 게다.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것이다.

한국이 상업영화를 잘 만든다는 얘기는 밖에서부터 많이 들려온다. 한류열풍이나 한국영화에 대한 아시아시장의 높은 관심으로 볼 때 앞날이 밝다. 개방화 시대인 만큼 아시아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전략을 세운다면 얼마든지 더 성장할 수 있다.

***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 - 대작 영화 점점 늘 것

요즘 한국영화 열기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현상이다. 영화에 대중적 관심이 많다는 거다. 좀 다른 얘기지만 영화감독이 장관하는 나라가 전 세계에 몇이나 있겠나. 외국은 영화 자체에 별 관심이 없다.

한국에선 대중문화산업 전체에서 영화가 선두에 있다는 방증이다.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영화가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더 이상 한정된 시장을 놓고 다투는 단계가 아니다. 한국영화 산업과 시장의 규모, 즉 파이 자체가 커진 것이다. '실미도'에 1천만 관객이 몰리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말죽거리 잔혹사'가 3백만명이나 들고 있지 않나.

한국영화에 투자하는 자본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앞으로 제작비를 많이 쓰는 대작영화가 늘 것이다. '실미도'나 '태극기…'처럼 내용이 실한 영화가 계속된다면 한국영화의 미래는 밝다. 다만 영화의 알맹이는 갖추지 못한 채 '크게 질러 크게 먹자'는 한탕주의가 만연할 수 있다. 그 부분은 경계해야 한다.

*** 김영진 (영화평론가) - 몇몇 영화에만 몰려

1회적인 현상일 수 있다. 전체 영화 관객 수가 앞으로도 이 추세로 계속 늘어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실미도'는 그동안 한국영화가 외면했던 것을 다루어 관객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었다는 측면에서 성공적이었다. 실미도 사건을 사회적인 쟁점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젊은층과 장년층을 두루 포괄할 수 있었다. 이 자체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될까 걱정이다. 외화를 포함해 1주일에 평균 7~8편의 영화가 극장에 걸리지만 한 두편을 제외하면 금방 간판을 내린다. 다양성이 없고 관객이 소수 영화에만 몰리고 있다. 굉장히 기형적이다. 소수의 '대박'과 다수의 '떨거지'들. 그 중간이 없다.

한 영화가 7백만~8백만명씩 관객을 끌기보다는 여러 편의 영화가 골고루 2백만명 정도씩 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훨씬 낫다. 1천만 관객이라는 건 한마디로 노약자 빼고 다 봤다는 얘기다. 이건 이상(異狀)현상이다. 이런 '폭로 영화'가 얼마나 오래 갈 수 있겠나. 금방 식상해 할 거다.

*** 김지석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 - 관객의 편식 심화 우려

관객 수가 늘어나는 것은 일단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일이다. 관객 1천만 시대의 저력은 무엇보다 한국 영화 수준이 눈에 띄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해외 영화제에서 경쟁부문 작품을 고를 때 한국 영화가 빠지면 왠지 허전해 하는 분위기조차 있다.

또 해외 수출.합작 등에 어두웠던 국내 영화인들이 눈을 뜰 기회도 마련해 주었다.

우려되는 건 관객의 편식이 심화되는 것 같다는 점이다. 얼마 전 태국을 가보니 지난해 개봉한 외화가 2백여편인데 이 중 할리우드 영화가 절반 정도이고 나머지는 세계 각국 영화가 고루 섞여 있었다.

태국이 한국보다 영화 제작 수준은 떨어질지 몰라도 관객 풍토는 더 앞서있는 것 같다. 편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비상업적인 영화.예술영화가 안정적으로 유통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언론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이런 '작은 영화'들을 다뤄줘야 한다.

정리=홍수현.기선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