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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칼럼

더 주목해야 할 브라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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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브라질은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가운데 가장 소홀히 다뤄지는 국가다. 정치적 발전과 국제 투자환경을 적극 활용하는 능력으로 볼 때 브라질을 이렇게 다루는 것은 실수다.

2002년 10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가 국민이 뽑은 첫 좌파 대통령이 됐을 때, 사회주의식 통제경제정책을 쓰거나 브라질의 ‘우고 차베스(베네수엘라의 좌파 대통령)’가 되어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나라 돈을 마구 쏟아부어 인기를 올리려고 할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룰라는 브라질이 성공하려면 외국 투자가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사실과 타협의 가치를 잘 알고 있음을 반복해서 보여줬다. 자신이 실용주의자며 차베스처럼 이데올로기에 갇힌 사람이 아니란 것도 증명했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브라질은 국가 채무를 일정대로 갚아 나갔다. 수백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도 생겼다. 인플레율은 떨어졌고 개인신용이 증대돼 상류층과 빈곤층 모두 구매력이 크게 늘었다. 2006년 10월 그가 쉽게 재선된 것은 이 같은 경제치적 덕이 컸다.

재정상태가 좋아진 데는 철광석을 비롯한 원자재 가격 급등이 한몫했다. 중국의 원자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국제가격이 폭등해 이를 수출하는 브라질은 큰 이득을 봤다. 재정은 흑자며,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는 1600억 달러로 늘었다. 국채 수익률은 미 국채보다 2.2%포인트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유동성 위기가 브라질 경제를 심각한 상황으로 몰고가지 않을 것이란 외국 투자가들의 믿음 때문이다.

브라질의 GDP 성장률은 올해 5%, 내년엔 4% 이상을 유지할 전망이다. 룰라는 그 덕에 연이어 터지는 측근 비리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60%의 지지율을 누리고 있다. 올 8월까지 브라질에 몰려든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265억 달러로 지난해 전체 액수(188억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유엔 무역개발위원회가 192개 다국적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브라질은 ‘앞으로 3년 동안 가장 투자할 만한 국가’ 순위에서 5위였다.

GDP의 35%나 되는 무거운 세금과 주요 이슈에 대한 더딘 개혁작업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긴 하다. 하지만 거대 개혁작업이 아닌, 민간 투자를 끌어들이는 데 필요한 작지만 중요한 개혁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다. 예를 들어 천연가스 부문에 민간투자를 장려하는 입법을 서두르고 있으며, 반독점법도 의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경제에 가장 큰 긍정적 영향을 줄 개혁은 역시 세제개편이다. 복잡한 세제를 통일하고, 주별 부가세를 신설하는 법안이 의회에 몇 주 안으로 상정될 계획이다. 경제가 성장하고 이에 따라 세수가 늘어나면 룰라 행정부는 개혁에서 소외된 계층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할 수 있게 된다. 미국 민주·공화 양당에서 바이오 연료에 대한 지지가 크게 늘고 있는 것도 브라질엔 희소식이다. 미 의회가 현재 갤런당 53센트씩 부과하고 있는 브라질산 에탄올 연료의 수입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브릭스 국가 중 장기 성장 전망에서 브라질은 가장 주목해야 할 국가다. 중국은 불안한 정치상황이 장기 경제전망에 대한 자신감을 깎아먹고 있다. 인도에서는 자유화와 경제성장 대신 지역이익 보호에 급급한 군소 정당의 입김이 점점 커지고 있다. 러시아에는 외국인 투자에 호의적이지 않은 규제들이 여전하다.

반면 브라질은 정치적으로 몇 가지 주요한 진전이 이뤄졌다. 좌파는 유연하게 변신했고, 시장친화적인 거시경제 정책을 써야 한다는 국내 여론도 확고하다. 이런 안정적인 정치 환경이 앞으로 수 년간 브라질의 경제 성장을 든든하게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

이언 브레머 국제정치 컨설팅 회사 유라시아 그룹 대표

정리=최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