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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여성 전용칸'에 쏠리는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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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에 여성 전용칸을 만들려는 서울시의 계획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30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은 내년 초부터 출퇴근 시간대 1~8호선 모든 노선의 맨 앞과 맨 뒤 칸을 여성 전용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여성 승객의 반응이 좋으면 전용칸의 수를 더 늘릴 수도 있다고 한다.

여성 전용칸을 만드는 이유는 지하철에서 갈수록 심각해지는 여성에 대한 성범죄를 막기 위해서다.

지하철 성범죄는 2005년 465건에서 지난해 608건으로 급증했다. 올 상반기에도 346건에 달해 올해 전체로도 지하철 성범죄는 지난해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005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노선별로는 2호선이 741건으로 가장 많았고, 4호선도 351건이나 됐다. 승객이 몰려 붐비는 노선일수록 성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하철 경찰대의 인력은 114명에 불과하다. 교대근무를 하기 때문에 실제 하루 평균 근무하는 경찰은 30여 명에 불과하다. 이 인원으로 지하철에서 범죄를 예방하기는 역부족이라 서울시는 고육지책으로 여성 전용칸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의 이런 방침에 대해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여성 전용칸 운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2년 12월 인천.수원 지역을 오가는 국철과 지하철 1호선 구간에서 여성 전용칸을 설치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여성 전용칸에 타는 남성이 많아지면서 전용칸이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47년 여성 전용칸을 처음 도입했다. 일본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실효성을 이유로 없어졌다 다시 생겼다 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뒤 현재는 도쿄의 주요 전철에서 평일 출근 시간대에 여성 전용칸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효과가 크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이미경 소장은 "복잡한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기에도 급급한데 여성 전용칸의 실효성이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적극적인 홍보 캠페인으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다는 계획이지만 바쁜 시간대에 지하철을 타는 남성들에게 여성 칸을 피해 달라는 호소가 먹힐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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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있을지 모를 부작용도 우려된다. 여성에 대한 성범죄 예방이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자칫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간주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혜정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 연구교수는 "여성 전용칸이 사회적으로 성범죄의 심각성을 환기시키는 의미는 있지만 전용칸을 이용하지 않는 여성은 성범죄의 대상으로 삼아도 된다는 왜곡된 인식도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여성 전용칸을 도입하기에 앞서 시민들의 의견을 먼저 묻고, 예상되는 부작용에 면밀히 대비해야 한다.

주정완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