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계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불가에서 말하는 인간의 심리상태인데, 영화의 원작인 장아이링의 소설에 아주 잘 표현돼있다. 색(色)은 육체적인 욕망일 수도 있지만 색깔, 즉 눈에 보여지는 것을 말한다. 그 욕망에 속지 않기 위해 계(戒)가 필요하다. 내 개인에게 가장 큰 색(色), 즉 욕망은 영화만들기다. 몸이 마음을 배신하는 경험을 하는 왕차오즈도,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면서도 지배하려고 하는 친일파 이선생도, 냉정함을 유지하는 왕차오즈의 동료 광위민(왕리훙)도 모두 내 자신의 일부다. 이런 온갖 관계 속에서 내 자신의 욕망에 속지 않게 감시하는 제3의 눈이 있다면, 그게 내 계(戒)다.”
-량차오웨이의 연기가 대단하다.
“오래 전부터 꼭 함께 일하고 싶었다. 섬세한 감성과 표현력이 모든 감독이 꿈꾸는 배우다. 이번 영화에서는 전에 한번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주문했다. (홍콩출신인 그가) 영화 전체를 만다린어로 연기한 것도, 악역도, 중년남자역할도 다 새로운 도전이었다. 특히 친일 반역자가 지닌 두려움을 너무도 잘 표현했다. 이전의 량차오웨이 같은 모습은 딱 한 번, 클라이막스에서만 주문했다. 어떤 여자도 반할 수밖에 없는 눈빛 말이다.”
-동성애를 다룬 ‘브로크백 마운틴’도, 이번 영화도 두 주인공의 첫 정사장면이 퍽 폭력적이다.
“두 영화 모두 사회적으로 금지된 사랑을 다룬다. 금지의 강도가 셀수록, 그 사랑은 더욱 격정적이 된다. 주인공 모두 자기 억압, 자기 모멸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다만 ‘브로크백 마운틴’이 그 사랑을 순수한 천국처럼 그렸다면, ‘색, 계’는 지독히 현실적인 지옥이다. 내게 두 영화는 자매편 같은 작품이다.”
-두 영화에서 연달아 육체를 통해 소통하는 극한적 사랑을 그렸는데.
“내 자신의 자연스러운 변화 같다. 밖에서 보는 나는 수줍고, 소극적인 사람이지만 그런 내 모습의 투영은 ‘센스 앤 센서빌리티’(1995년작)까지만이다. 이후로는 내 자신의 모습을 양파껍질 벗듯 벗기 시작했다. 껍질을 벗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극단적인 감정에 몰입하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누가 나한테 그만하라고 신호를 보내줬으면 싶었다. 나는 영화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할 수 있는 용기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본다. 그런데 지금은 미치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웃음)”
-정사장면들에서 배우들의 동작과 자세를 세밀하게 지시했다고 하던데.
“(얼굴을 점점 붉히며) 내 도덕관념과 숫기없음을 제쳐둬야 하는 힘든 장면이었다. 관객들에게 그 뒤틀린 사랑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을 생각했다.”
글=이후남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