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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학교 선택권도 인권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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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교육인적자원부가 29일 ‘고등학교 운영개선 및 체제 개편 방안’을 발표하면서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를 폐지하고 특성화고(구 실업고)로 전환하는 방안, 특목고를 현행대로 유지하면서 보완하는 방안 등 두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연구 검토한 뒤 내년 6월 최종안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특목고를 사교육 주범으로 몰아 설립을 억제하는 동시에 기존 학교를 폐지하거나 다른 형태로 전환하겠다는 뜻까지 밝혀 온 교육부가 내년 6월까지 유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학교 선택권은 인권이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1948년에 공포된 유엔인권선언은 제26조 3항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제공되는 교육의 종류를 선택함에 있어 우선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세계 역사상 학교 선택권을 가장 억제한 정권은 히틀러 치하의 독일 나치 정권이다. 나치 정권의 말로는 멸망으로 끝났다. 이를 교훈 삼아 대부분 현대국가에선 다양한 형태의 공·사립학교를 제공해 국민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있다.

 미국에는 다양한 형태의 중·고교가 있어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다양한 사립학교는 물론 수학·과학기술·예술 교육 등을 하는 공립 마그넷 스쿨, 실적을 근거로 한 협약에 의해 자율 운영되는 공립학교인 차터스쿨이 있다.

 캐나다는 공립 중등학교 안에 수학·과학·리더십 등 각종 특수목적 학급인 미니스쿨을 도입해 학생의 지적·사회적·직업적 개발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미국·캐나다에선 정부는 물론 교원·학부모 단체도 특목고인 마그넷 스쿨과 일반계 학교 내 특수목적학급인 미니 스쿨을 귀족학교·학급으로 매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재능 개발을 돕기 위해 정부·교원단체가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학부모에게도 학교 설립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학교 운영비는 정부가 부담하지만 인구 2만5000명 미만 지역은 학부모 50명, 10만 명 이상 도시는 학부모 125명이 교육부 승인을 얻어 학교를 만들어 자율 운영할 수 있다. 학부모는 불만족스러운 학교에 자녀를 보내지 않을 권리가 있다. 학생들이 오지 않으면 폐교되기 때문에 교직원들은 학생들이 만족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근본적인 교육개혁을 실시한 국가다. 91년 법률로 중앙정부의 교육권력을 학부모·시정부·사립학교에 이양했다. 학부모에게 학교선택권을 돌려준 것이다. 그 결과 92년 교육개혁 이후 사립학교 수는 배로 늘고, 학생 취학률도 매년 10% 이상 증가했다.

 뉴질랜드는 88년 중앙집권적인 교육부 권한을 개별 학교로 이관하는 혁명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이로 인해 4000명에 달하던 교육부 인원은 400명으로 슬림화됐다. 나아가 지역교육청을 폐지하고 그 기능을 개별 학교로 이양해 단위학교별 자율경영체제를 성공적으로 수립했다. 한국의 학교들이 자율성을 확보하려면 뉴질랜드와 유사한 조치가 필요하다. 지역교육청을 폐지하거나 교수학습지원센터로 전환하는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학교가 있어야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다. 선택할 학교가 없거나 적다면 유엔인권선언이 명시한 선택권은 그림의 떡이다. 학생이 가고 싶어 하는 학교를 많이 만들고, 가고 싶지 않은 학교를 가고 싶은 학교로 바꾸거나 폐지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임을 감안해 교육부는 특목고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권대봉 고려대 교수·교육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