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 세계 최고 목판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통일신라 유물일 가능성 높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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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서지편 110쪽 중 하나. 박물관은 문서 사진을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에 공개했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불국사 석가탑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이하 무구정경)은 언제 만들어졌고 언제 석가탑 안으로 반입됐을까. 이 궁금증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됐던 ‘묵서지편’(墨書紙片)이 판독됐으나 완전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무구정경은 통일신라 때 것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문서를 판독해 27일 보고회를 열었다. 학계에선 무구정경이 당초 통일신라 때 석가탑이 창건되면서 함께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석가탑이 고려 때 수리됐다는 사실이 2005년 알려지면서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 중 하나로 꼽히는 무구정경의 제작 및 반입 시기에 논란이 일었다.

서울대 국사학과 노명호 교수와 언어학과 이승재 교수가 고려 이두로 적힌 묵서지편 110쪽을 판독한 결과, 고려 현종 15년(1024) 처음으로 석가탑을 해체하면서 무구정경 9편(偏)과 무구정경 1권(卷)을 사리공에서 수습했다가 안장(安藏)한 것으로 밝혀졌다. 원인은 지진으로 인한 탑의 파손이었다. 이때 ‘사리를 안장하되 전에 있던 물건들은 그대로 두고(前物不動)’라는 구절이 있어 무구정경이 신라 시대 석가탑 창건 때 안치한 것일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고려 정종 4년(1038)에 작성된 문서엔 ‘이 해 ○월 ○○일 대덕(大德, 승려) 숭영(崇英)이 보협인다라니경을 (사리공에 매)납(納)했으며 얼마 뒤 무구정경 1권을 ○했다’고 적혀 있다. 이 교수는 글자가 지워져 있어 정확한 내용은 판독할 수 없으나 문맥상 ‘납(納)’으로 추정했다. 이렇게 되면 고려 때 무구정경을 넣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 무구정경이 신라 때 것을 그대로 다시 넣은 것일지, 고려 때 새로 제작해 넣은 다른 것일지는 미스테리다.

◆석가탑 ‘타임캡슐’=묵서지편은 1966년 석가탑 발굴 때 사리함 세트, 무구정경 등과 함께 나온 정체불명의 종이뭉치다. 박물관은 97년에야 이 뭉치를 110쪽의 낱장으로 분리했으나 판독하지 않은 채 뒀다. 2005년 이 문서 중 하나가 ‘무구정경탑중수기(重修記: 개보수한 기록)’라는 사실, 즉 석가탑이 중간에 수리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일부에선 무구정경이 고려 때 새로 들어간 것일 가능성도 제기했다. 박물관은 올 4월부터 ‘석가탑 발견유물 조사위원회’(위원장 천혜봉)를 꾸려 문서 판독에 들어갔다.

◆“무구정경은 통일신라 것”=조사위원들은 이날 무구정경이 통일신라 시대의 것임을 뒷받침하는 여러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이승재 교수는 고려 때 새로 들어간 묵서지편은 사리함 밖 바닥쪽에서 나온 반면, 무구정경은 사리함 안 깊숙히서 발견된 대목을 들었다. 또한 무구정경의 서지나 서체 등으로 미뤄 신라 때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천혜봉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무구정경 속에 중국 당나라의 여제인 측천무후의 재위 기간(685∼704)에만 사용됐던 측천무후자(字)들이 나왔다는 점을 들었다.

 과학적 방법으로 무구정경의 제작시기를 밝히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에는 대개 숯이 사용된다. 나무를 가공해 종이로 만든 뒤 배접하고, 발굴 후 복원수리까지 거친 무구정경으로는 정확한 연대 측정을 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물관은 이날 문서사진 전체를 홈페이지(www.museum.go.kr)에 공개해 관련 학자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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