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중병 걸린 건보공단, 골병 드는 국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무래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중병에 걸린 것 같다. 어제 열린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이 들춰낸 건보공단의 환부는 몇 가지만 열거해도 이렇다. 공단은 지난 4년간 받지 말아야 할 건강보험료를 5825억원이나 걷어들였다. 반면 징수해야 할 보험료는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재정 위기를 부추겼다. 보험료를 체납해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없는 자가 진료를 받아 생긴 부당진료금액이 6060억원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공단은 재산 압류는커녕 납부 고지서도 발송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자진 신고하면 부당진료금을 감면해 주고 있었으니 공단이 가입자들에게 보험료를 안 내도 된다고 부추긴 셈이다.

해야 할 업무는 미뤄놓고 일부 직원은 엉뚱한 짓만 하고 있었다. 그들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전·현직 대통령과 유명인의 개인정보를 맘대로 들춰봤다. 얼마 전 대선주자 여섯 명의 재산·소득·가족관계 등도 함부로 열람해 형사고발을 당한 기관이 바로 건보공단이다.

보건복지부는 내년에 건강보험료를 8.6%나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올 초에도 보험료를 6.5%나 인상했지만 그 수준으로 동결할 경우 내년 한 해 동안 1조4000여억원이나 적자가 나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직장인 건강 보험료는 평균 6만5000여원에서 8만원대로 치솟는다. 국민을 만만한 봉으로 보고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구멍 난 재정을 메워 보겠다는 안이한 발상이다.

잔병에는 비타민이나 영양제로도 원기를 금방 되찾을 수 있다. 하지만 뿌리가 깊은 환부는 도려내야 치료가 가능하다. 건보공단의 기강 해이와 도덕성 마비는 주사나 약으로 치료될 정도가 아닌 것 같다. 공단은 기강 해이와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운영 문제를 철저히 점검하고 관리해야 한다. 무너진 기강은 바로잡고 새 나가는 돈은 틀어막아야 한다. 또 탈루와 제대로 받지 못한 보험료는 정보체계를 쇄신해 샅샅이 걷어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고도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그때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다. 건보공단의 중병이 국민들에게 화병이나 골병으로 전가될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