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터에서>초년병의 실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오늘도 이른 새벽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집을 나선다.집과 회사의 거리가 먼 관계로 남들이 한창 꿈나라를 헤맬때 전철에 몸을 싣지만 마음은 가볍다.처음엔 이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무척 힘들었지만 지금은 다르다.일찍 출근하는 덕에 요즘같은 무더위에도 새벽의 잠깐 부는 시원한 바람으로 하루를 기분좋게 시작할 수 있는 활력을 삼기도 한다.
한결 여유로워진 아침,나날이 분주하고 실수투성이던 지난날을 떠올리면 얼굴이 빨개지곤 한다.트럭의 짐칸과도 같은 만원전철에실려 땀으로 목욕하며 출근한 어느 아침,이사님 방을 청소하다 발이 미끄러져 큰대자로 넘어진 일,창피함과 당혹 감에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던 일 등이 잊혀지지 않고 내 기억속에생생히 남아있다.
평소 덜렁대는 성미탓에 결재란을 보지도 않고 결재가 나지않은서류를 부사장실에 올려놓기도 했고,의당 손님에게 먼저 차를 내야 함에도 이사님에게 먼저 접대,꾸중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기억보다 더욱 뚜렷하게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일이 있다.대리점 사업부에 발령을 받은 첫 날이었다.외출한 이사님을 급히 찾는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이사님께서 잠깐 자리를비우셨습니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쪽에서 전 화를 끊는 소리가 들렸고 무슨 이유인지 나는 그 전화가 사장님 전화일 것이라고 믿어버렸다.
막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이사님께서 들어오셨고 나는 사장님이 찾으신다고 전했다.출장중인 사장님이 급히 찾는걸로 봐서 뭔가 큰 일이 생긴게 틀림없다고 판단한 이사님과 직원들은 사장님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30분정도 지나 가까스로 사장님이 계신 곳에 연락이 닿았으나 사장님은 전화를 하신 일이 없단다.
난 당장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내가 잘못받은전화때문에 많은 사람이 초긴장이 돼 움직였다니 내자신이 너무 원망스럽고 부끄러웠다.그 후로는 상대방의 목소리를 파악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이제는 웬만한 목소리는 숨 소리만 들어도구분할 정도가 됐고 가끔은 전화하시는 분들이 목소리를 잘 기억해줘 고맙다는 말까지 하신다.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 했던가.
앞으로도 나의 실수는 계속될 것이고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겠다.
〈롯데칠성음료㈜ 대리점사업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