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미정, 경쟁 도입 … 진화하는 중국 공산당식 민주정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그래픽 크게보기>

이번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17大)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과거와 달리 차기 총서기 후보를 미리 확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진핑(習近平) 상하이시 서기와 리커창(李克强) 랴오닝성 서기를 새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발했으나 누가 5세대 리더가 될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 없이 여지를 남겨 놓았다. 1992년 50세에 최연소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되면서 4세대 집단 지도부의 리더를 예약했던 후진타오와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차기 권력을 놓고 경합을 벌여야 하는 경쟁 체제가 도입된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중국은 경제와 문화 부문에선 이미 선진국과 궤를 같이할 만큼 높은 수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정치 부문은 늘 도마에 오른다. 민주화가 안 돼 있다, 투명성이 부족하다, 공산당 일당 독재로 견제 장치가 없어 부패가 만연하고 있다 등. 공산당도 인정하는 문제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듯이 공산당 독재 체제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서구식의 다당제를 도입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이 고민 끝에 내놓은 정치 부문의 우선적 개혁이 당내 민주 제도 도입이다.

정융녠(鄭永年) 영국 노팅엄대 교수에 따르면 중국은 정치 개혁에 대한 인민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3단계 방안의 정치 개혁을 고려 중이다. 먼저 당내 민주를 달성하고, 이어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정부 감독을 강화하는 헌정(憲政) 민주,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시민이 참여하는 사회 민주가 바로 그것이다.

중국이 이번 17대에서 5세대 리더를 바로 결정하지 않고, 앞으로 경합에 의해 뽑겠다고 한 것은 바로 첫 번째 단계인 당내 민주 확대에 해당하는 것이다. 지도자들도 서구 사회처럼 다른 후보들과의 경쟁을 통해 올라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중국 공산당은 또 이번 중앙위원 선거에서 당선자보다 후보자를 많게 하는 경쟁 선거 방식인 차액(差額)선거 비율을 지난 대회보다 높였다. 탈락자 비율을 지난 대회 5%에서 이번엔 8.3%로 높여 당내 민주화를 조금 더 진전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차기 총서기가 누가 될 것인지와 관련해 내부적으론 시진핑이 리커창에게 앞선다는 평가다. 우선 시는 서열 6위에 올라 7위의 리를 앞서 있다. 21일 실시된 중앙위원 선거에서도 시는 2227표로 리보다 한 표를 더 얻었다. 이에 따라 내년 3월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시가 국가 부주석, 리가 부총리로 선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럴 경우 시는 5년 뒤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 리는 총리로 승진해 현재의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를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한 가지 전제가 따른다. 시진핑이 리커창보다 앞서는 실적을 보여주고,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후진타오가 덩샤오핑에 의해 차세대 중국 지도자로 낙점을 받고도 10년 세월을 은인자중해 온 사실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전성흥 서강대 교수는 중국의 정치가 이젠 점차 제도화되고 있는 추세로 깜짝 발탁 등의 경우는 희박하며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18차 당 대회에선 시-리 체제가 굳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유상철 기자

☞◆치국 상무위원회=1956년 8차 당 대회 이후 설립된 최고위 통치 집단이다. 중국 정치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엘리트 그룹이다. 국가와 당에 관계된 모든 정책과 고위 간부에 대한 최종 인사권을 갖고 있다. 중앙위원회에서 선거로 선출되나 선출 기준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당에 대한 공로, 앞으로의 기여 가능도, 능력, 충성심 등 각종 사항에 계파 간 타협이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보통 5~9명으로 구성되며, 각 상무위원은 선전 담당 등과 같이 당무를 분야별로 나눠 맡고 있다.

☞◆차액(差額)선거=중국 공산당이 당 대표대회와 중앙위원 등을 선출할 때 채택하는 방식이다. 정해진 정원보다 많은 후보자 명단을 놓고 토론을 벌인 뒤 투표해 초과 인원을 떨어뜨린다. 공산당은 차액 선거 범위와 비율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올해 17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중앙위원 선출 과정에서 처음 이 방식을 도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