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조화와 부흥 모색하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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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17대)가 21일 폐막했다. 후진타오 총서기의 통치 비전을 담은 ‘과학발전관’이 당장에 삽입됐고, 향후 5년간 중국을 이끌 지도부인 371명의 중앙위원회가 구성됐다. 중앙위원회는 어제 열린 제1차 전체회의에서 최고 지도부인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을 선발했다. 쩡칭훙 국가 부주석 등이 물러나고, 시진핑 상하이시 서기와 리커창 랴오닝성 서기 등이 새로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라 차세대 1인자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게 됐다. 이로써 5년마다 열리는 중국 최대의 정치 이벤트는 일단락됐다. 예정된 정책 가이드 라인과 예상된 인물들을 등장시켰고, 의외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중국 정치도 이제는 서서히 제도화 단계를 밟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17대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인사 내용이다. 주목할 내용은 인문·사회 분야 전공자의 상무위 진입이다. 앞서 상무위원 9명은 모두 이과 출신의 기술 관료들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문과 출신 박사들인 시진핑(법학)과 리커창(경제학)이 포함됐다. 이들의 상무위 진입이 갖는 함의는 중국이 앞으로 어떤 자질의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가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기술보국(技術報國)’의 기치 아래, 경제 건설에 매진할 테크노크라트가 필요했다.

그러나 세계 4위의 경제 규모가 된 지금 중국의 입장이 달라졌다. 빈부 격차 등 고속 성장의 그늘에 가려져 온 사회 갈등을 치유할 지도자가 요구되고 있다. 각 계층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위해선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정치가가 필요하고, 이를 인문·사회과학 배경을 갖춘 인물 중에서 찾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리더십 선발에 대한 벤치마킹 대상은 미국이다. 미국은 42명의 대통령 중 60% 이상이 변호사 출신이다. 1865년 남북전쟁 이래 미국이 커다란 내분을 겪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가 지도자가 사회 갈등을 조율할 줄 아는 법학 전공자였다는 점에 중국이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후진타오 총서기의 정치 보고에 자주 등장한 용어 ‘부흥(復興)’이다. 후진타오는 이번 정치 보고에서 11차례나 중화민족의 부흥(振興 포함)을 실현하자고 외쳤다. 과거엔 좀처럼 듣지 못하던 말이다.

무슨 뜻일까. 이를 알기 위해선 중국 TV를 엿볼 필요가 있다. 중국 중앙텔레비전(CC-TV)은 17대를 앞두고 6부작 특집 ‘부흥의 길(復興之路)’을 방영했다. 10월 5일부터 10일까지 CC-TV 1채널을, 그것도 황금 시간대인 오후 8시부터 방영했다. 이것도 모자라 10일부터 17대 개막일인 15일까지는 CC-TV 2채널을 통해 재방영했다. 부흥의 길은 1840년부터 2007년까지 167년간의 중국 역사를 여섯 시기로 나눴다. 구망(救亡)을 모색하는 쑨원과 중국 공산당의 탄생,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WTO 가입으로 세계 경제와 궤를 같이한 장쩌민의 선택, 그리고 조화 사회를 건설해 가는 후진타오의 노력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부흥의 길은 후진타오의 정치 보고 내용을 대중이 알기 쉽게 영상화한 것이다. 2시간20분간의 정치 보고에서 강조코자 했던 주제가 부흥이었다. 그렇다면 언제로의 부흥인가. 부흥의 길이 1840년 아편전쟁으로 시작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답은 바로 나온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던 아편전쟁 이전의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부흥의 길 외침 앞에서 ‘조용히 힘을 기르자’던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주장은 과거의 유물로 전락한 느낌이다. 부흥 운운은 자신감의 발로다. 이 같은 중국의 자신감은 달 탐사선 ‘창어 1호’에 실릴 예정이다. 자신감을 갖고 옛 영화 회복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나선 중국을 상대하기가 갈수록 버거워질 전망이다.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