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민족국가의 쇠퇴-핏줄보다 최선의 정부로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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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계질서를 이루는 기본단위로 받아들여졌던 민족국가의 시대가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美國對 舊蘇聯,그리고 이념간의 대결이 종식되면서 어떻게 최선의 정부를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다시 고심하고 있 는 것이다.
민족국가와 민족국가내 정부는 동시대 삶의 양식의 많은 부분을규정하고 있다.그러나 현재의 정부체제는 사람들로부터 충성심과 정통성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인종적 감정이 국경선이나 법에 거부반응을 보일 때마다 민족국가는 큰 혼란을 겪어 왔다.
특히 정부가 더 이상 자신이 속한 사회를 이제까지 겪지 못했던 생소한 경쟁이나 이민 유입과 같은 변화로부터 막아줄수 없다는 사실을 유권자들이 깨닫게 되고,공산주의 붕괴가 도화선이 되어 인종간 갈등이 분출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혼란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유고슬라비아의 분규,유엔에 대한 불신,러시아와 이전 위성국의미래에 대한 불안은 이같은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다.부언하자면 성숙한 민족국가라 할지라도 더 이상 자국 국민들에게 적절한 正體感을 부여할수 없으며,민족국가를 초월하는 정치 단위의 도래는필연적이지만 아직 수용할 태세는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이다.
민족국가란 단어는 사회의 다양한 에너지를 하나의 통일된 질서와 정치권력에 묶는 도구로 이용되어 왔다.「남」에 대한 통일체의 자기주장 방식은 나라마다 다양했다.그러나 공통된 점은 민족국가들이 자기확보를 하는데 있어 정부의 영역 확대 ,철도,전보,보통선거제도의 도입,국가,국기,맹목적 애국주의등 19세기의 산물이 한몫을 했다는 것이다.
과거 민족국가의 형성과 통치를 가능케 했던 기술적 진보가 오늘날에는 자본과 정보를 국경선 너머로 내몰고 있다.또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를 원하는 기업들을 국내에 안존할수 없게 만들고 있다.국가를 초월하는 도전은 경제외적 영역에서도 계속되고 있다.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나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보듯 TV등매스미디어의 발달은 설사 한 국가가 국경선 안에서만 통치행위를한다하더라도 결코 그것이 침해불가능한 성역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해준다.
결국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세계정부의 탄생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민족국가 탄생을 뒷받침했던 정체성과 정통성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군사적 안전에 관한한 여전히 민족국가에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어려움 가운데 하나다.초국가정부는 서서히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비록 신국제질서라는 말이 정치나 윤리에서는 맥을 못추고 있지만실제 신질서가 요구되는 경제 영역에서는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하다.유고슬라비아가 유엔을 무시하고 있지만 세계각국의 노력에 의해 가트에 의한 세계무역질서는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초국가정부의 정치적 미래 역시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이미 민족국가를 초월하는 권위체가 작은 국가나 지역에서는 기치를 올리고 있다.유럽연합의 깃발은 기울어진 역사의 원상회복을 상징한다는 생각에서인지 몰라도 런던.마드리드보다는 스코틀 랜드나 카탈루냐에서 자주 휘날리고 있다.
민족국가는 아직 죽지 않았으며 여전히 충성과 정통성을 담아내는 주된 조직체로 기능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국가의 역할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美 뉴욕타임스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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