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제17차 당 대회 보고에서 제시된 경제정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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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 19면

중국 공산당 17차 전국대표대회가 1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했다. 이날 대회에는 후진타오 총서기와 장쩌민 전 총서기가 나란히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신화사 특약]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발전’. 미국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연상케 하는 말이다. 이 발언의 주역은 후진타오 중국 공산당 총서기였다. 그는 1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7차 당 대회 보고에서 ‘당의 모든 업무는 인민을 부자로 만들어 주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인민을 위한 부(富)의 확대’에 경제정책의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중국을 이끌고 있는 공산당은 어떻게 인민의 부를 확대하고, 관리해 나갈 것인가. 후 총서기는 그 질문의 해답으로 ‘재산성 수입’을 제시했다. 당 대회 보고 이후 재산성 수입이라는 말은 향후 5년 경제정책의 방향을 가늠할 키워드로 등장했다.
 
■주식 투자 활성화로 중산층 양산

‘재산 증식’으로 중산층 키우기

후 총서기의 보고는 모두 2만5000자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발표하는 데만 2시간20분이 걸렸다. 재산성 수입이라는 말은 보고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나왔다. “더욱 더 많은 군중이 재산성 수입을 가질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짤막한 문장이 다였다. ‘재산성 수입이라니?’ 돈에 예민한 중국인은 직감적으로 ‘돈 냄새’를 맡았다. 인터넷에서는 그 의미를 놓고 뜨거운 토론이 벌어졌다.

상푸린(尙福林) 증권감독위원회 주석의 유권해석이 나온 것은 연설이 끝나고 서너 시간 뒤였다. 그는 “재산성 수입은 저축·주식·채권 등에 대한 투자수익, 주택·토지 등 부동산의 매매 또는 임대 수입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자산소득(Asset income)’이라는 얘기다. 후 총서기의 말은 결국 “더 많은 사람이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뜻이었다. ‘인민이여, 재테크에 나서라’라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중국 증시 분석가들은 “중국 공산당이 장기적으로 증시 활황세를 유지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중국 투자가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당 대회가 열린 날 상하이 주가는 6000포인트 고지를 뚫고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후 총서기가 중국인을 재테크 전선으로 내모는 이유는 분명하다. 임금소득에 의존한
기존의 단편적 소득 구조로는 부의 확대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소득은 그동안 임금에 의존하는 구조였다.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중국 가구의 가처분소득에서 임금소득은 약 70%를 차지하는 데 반해 자산소득은 2%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나머지 약 28%는 퇴직금 또는 양로지원금). 월급이 올라야 가계 소득이 늘어나는 구조다. 중국건설은행의 궈수칭(郭樹淸) 회장은 “후 총서기는 ‘더 이상 임금소득에 의존하지 말고 투자 등 수입원을 다양화하라’고 말하고 있다”며 “가계 수입이 크게 늘어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이는 중국이 ‘임금소득 의존형 경제’에서 ‘자산소득 위주의 경제’ 구조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경제가 일정 수준 발전하게 되면 가계 소득에서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게 마련이다. 일부 개발도상국은 인위적인 조치를 통해 이 같은 흐름을 앞당기기도 한다. 전반적인 부의 확대를 통해 중산층의 폭을 넓히겠다는 취지다. 후 총서기의 이번 재산성 수입 증가 발언도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고 있다.
 
■성장 패턴, 소비 주도형으로 전환

후 총서기의 ‘재산성 수입’ 발언은 그가 추구하고 있는 ‘과학발전관’의 큰 틀 속에서 나왔다. 과학발전관은 한마디로 ‘이젠 경제성장도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추진하자’는 것이다. 무리한 성장이 낳은 빈부격차·환경오염·에너지 부족 등의 부작용을 치유해 가면서 발전을 추진하자는 얘기다.

과학발전관의 핵심은 성장 패턴의 변화다. 중국 경제는 그동안 투자와 수출에 의존하는 구조를 보여왔다. 이 같은 구조에서 각 지방 지도자들은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묻지마 식 투자’를 해왔다. 이는 과잉 투자를 낳았고,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인 경기 과열로 이어졌다. 후 총서기는 이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소비가 성장을 이끄는 선진국형 성장 패턴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을 육성하고, 수출보다 내수 확대에 정책의 역점을 둘 것이라는 설명이다.

재산성 수입 확대에는 가계 소득을 높여 소비를 늘려야 한다는 정책적 고려가 엿보인다. 베이징대의 린이푸(林毅夫)교수는 “그동안 중국인은 소득이 발생하면 은행에 저축하는 성향을 보여왔다”며 “은행에 잠겨 있는 돈을 주식시장 또는 부동산 시장으로 유도하자는 게 재산성 수입 증가가 갖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자산소득 증가를 통한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후 총서기는 이번 보고를 통해 “모든 인민이 그동안의 경제발전을 공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개인의 부를 높여주겠다는 뜻이다. ‘사람이 중시되는 발전(以人爲本)’은 그가 추구하는 과학발전관의 핵심 사안이기도 하다. 그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자산소득 증가였던 셈이다. 외형적인 경제성장보다 인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후 총서기가 이번 연설에서 제시한 ‘내실 중시의 성장(又好又快)’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재산성 수입의 우려되는 역효과

자산소득 확대 방침은 그러나 멀지 않은 장래에 중국 공산당을 옥죄는 요소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가계 소득에서 차지하는 자산소득의 비중이 높다는 얘기는 곧 주민의 소득이 주식시장 또는 부동산시장의 움직임에 좌우된다는 것을 뜻한다. 가계 소득의 리스크가 커지는 것이다. 이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주식시장이 과열로 치달으면서 중국인은 더욱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중국 주식시장의 폭락은 공산당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자산소득 증가를 통해 부의 규모를 확대하고, 궁극적으로는 중산층을 늘린다는 구상 역시 공산당에 독소로 작용할 수 있다. 금융이나 부동산시장이 활성화될수록 부의 편중 현상은 더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 일반화된 사안이기도 하다. 게다가 중국과 같이 시장 투명성이 낮은 상황에서 음성적 투자활동으로 인한 부의 집중은 더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중국 전역에서 일고 있는 부동산 투기 열풍은 부유층의 주머니만 불려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강한 시장은 거꾸로 공산당의 정책을 무력화할 수도 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을
걷고 있는 중국 경제는 계획과 시장의 충돌이라는 갈등 구조를 갖고 있다. 경제 규모가 작고, 시장의 힘이 약할 때 정부의 계획은 잘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커지고 자본시장이 확대되면서 정부의 정책이 시장에 먹히지 않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올 들어 다섯 차례 금리를 인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잡히지 않고 있다는 게 이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중국 주식시장은 이미 정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는 분석도 눈여겨볼 만하다.

시장을 살리자니 정부의 정책 추진력이 약화되고, 정부 정책의 힘을 유지하자니 시장이 죽고…. 중국 경제가 시장과 계획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기까지는 아직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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