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시대의 동반자 지능형 로봇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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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 27면

얼마 전 서울의 한 노인정에서 오랜만에 모인 노인들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다.

“요즘 무릎이 자꾸 아파 바깥 출입이 힘들어. 점점 근력도 떨어지는 것 같고. 요새는 움직이기도 귀찮고 해서 아예 텔레비전만 틀어놓고 산다니까.”

순덕이 할머니 말에 다른 할머니가 대꾸한다.

“나는 올해 들어 건망증이 부쩍 심해졌는데 이러다가 누구처럼 치매에 걸리는 것 아닌지 몰라. 어디 물어볼 수도 없고 정말 걱정이야”.

KIST에서 개발 중인 실버로봇의 개념도.

노인정의 대화 내용처럼 한국의 노인층은 지금 갖가지 시련에 당면해 있다. 정작 자신을 위한 것은 포기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노년을 즐길만한 충분한 자금도, 변변한 취미생활도 없는 이들이다. 이를 풀기 위해 실버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좀더 편리한 노인용품의 개발, 다양한 복지제도의 시행 등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 비용이 문제다. 사회복지예산의 대부분이 노인층을 위해 쓰여질 판이라고 하니 그 심각성이 예사롭지 않다. 묘수는 없을까.

묘수 중 하나가 지능형 로봇의 개발이다. 자동화 기계나 컴퓨터와 달리 인간적일 수 있다는 게 지능형 로봇의 장점이다. 인간의 형상을 가지고 인간의 오감에 해당하는 인식능력이 장착되면 우리에게 그야말로 멋진 동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표정이나 말투 그리고 처해 있는 상황을 인식해서 노인의 감성상태를 알아내고, 이에 대응해 어떤 때는 즐겁게 해주고 어떤 때는 위로할 수 있는 역할이 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아직은 기술적으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런 로봇이 등장하면 자식들 입장에서도 지능형 로봇을 매개체로 부모와 좀더 부드러운 소통이 가능하다. 투약 시간, 병원 방문 날짜 등을 잘 챙겨 드릴 수 있으니 훨씬 마음이 놓이지 않겠는가. 노인 입장에서도 지능형 로봇과 돈독한 유대 관계를 만들어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 강아지보다 청결하고 운동시킬 필요도 없으니 아주 적합한 미래의 애완동물이다.

세계적으로 실버 로봇을 본격적으로 개발하려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KIST ‘21세기 프론티어 지능로봇 사업단’에서는 노인을 도와줄 로봇을 개발하는 국가 연구개발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2003년 시작됐으며, 총 개발기간은 10년이다. 선진국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기술을 선점하고자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도전 목표는 다음과 같다. 1) 스스로 지식을 성장시킨다. 2)식사 서비스가 가능하다. 3)노인에게 충성심을 보인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가 노력하고 있다. 지금 개발 중인 실버 로봇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10년 뒤에는 노인정의 모습이 이렇게 변하지 않을까.

“ ‘로비’(실버로봇)하고 요즘 하루에 1시간씩 걷기를 했더니 무릎이 많이 좋아졌어. 오늘은 노인정까지 같이 왔지.” 순덕이 할머니 말에 다른 할머니가 맞장구 친다.

“나는 로봇하고 매일 두 번씩 기억력 훈련을 하거든. 어제부터 중급코스에 들어가서 손자한테 오늘 자랑했어. 손자 놈이 오늘 선물 사온다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그 옆에 할아버지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아, 글쎄 이놈하고 놀면 시간가는 줄 몰라. 어제는 내가 내기장기를 두어서 다 이겼어. 물러달라는 걸 내가 안 된다 그랬지.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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