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북미회담 타결의 득실 北의 NPT카드 최대성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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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온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핵문제에 대해 美國과 北韓대표들이 제네바에서 극적인 합의에 도달했다.회담이 속개된지 며칠만에 합의가 이루어진것은 의외지만 양측대표가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갈루치대표와 姜錫柱대표가 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협상 결과의 낙관을 짐작할 수 있었다.이들은 옛친구를 만나는듯한 표정이었으며 특히 姜대표의 얼굴에는 희색이 넘치고 있었다. 갈루치대표는 지난번 회담에서 美대표에게 최상의 선물을 선사한 바 있다.北-美회담 진행중 金日成주석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거의 순간적으로 클린턴대통령이 弔意를 표시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이 성명의 아이디어가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전문가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제네바에서의 합의는 아주 포괄적이다.우선 북한측은 핵사찰을 받기로 했다.또 미국이 그처럼 우려해온 플루토늄 처리방법에 대한 합의도 있었다.미국은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할 것을약속했으며 북한의 대외무역 증진에도 합의했다.
미국은 또 경수로가 완성되기까지 향후 10년간 북한의 연료공급에 도움을 주기로 약속했는데 이는 가장 열악한 북한 경제에 대한 지원을 포함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번 합의의 징조는 3차회담에 들어가기전에,그리고 지미 카터 前美대통령이 平壤을 방문하기전에,북한이 카네기재단의 해리슨연구원을 초빙한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때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유엔에 상정했을 때였고,안건이 통과될 경우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는 북한의 험악한 성명서가 뉴스를 타고 날아다닐 때였다.
북한은 방북한 해리슨씨를 통해 더 이상 핵카드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냈다.미국도 그 직후 카터씨의 방북을 계기로 그들의 희망사항을 북한에 전달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때 지난 1년동안 핵문제에 대한「전술」은 너무나도 성공적인 것이었다.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라는 카드 하나로 상상밖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 카드때문에 NPT를 무엇보다 중시해온 미국으로서는 對北정책의 전반적인 수정이 불가피했으며 북한의 국제적인 위상은 한없이 높아졌다. 사실 NPT탈퇴선언이 없었더라면 클린턴정부가 카터씨의방북을 허락할리 없었고 金주석의 사망이후 조의를 표명했을 까닭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세부적인 면에서 아직 해결해야할문제는 많이 남아있다.그리고 金日成주석의 사망이후 남북한의 감정이 매우 악화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남아있는 현안들은 원만히 해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남북간 정상회담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유감이지만 이번 北-美간 합의로 팽팽했던 남북관계는 개선될 가능성이 커졌다. 北-美간 관계개선과 그에 따른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는 궁극적으로 남북에 사는 모든 국민에게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제네바에서의 합의는 카터씨의 방북초청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사실 金日成주석의 생전에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따라서 후계체제가 출범한 직후 협상을 결말짓도록 한 것은 그가 후계자에게 주고간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미국이 북한의 경수로가 완성되기까지 10년동안 북한의 연료공급에 도움을 준다면 북한의 당면한 경제문제가 풀리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동안 북한은 舊소련으로부터 수입하던 기계류와 油類의단절로 심각한 곤란을 겪고 있었다.
많은 공장이 가동을 중단했고 계획경제 아래에서 일부 시설의 작업중단은 연쇄적인 작용을 일으켜 경제전반에 심각한 침체를 가져왔다. 따라서 제네바에서의 합의로 북한의 경제문제에 대한 해결 방향이 잡힐 경우 후계자의 위상은 한없이 오르게 마련인 것이다. 앞으로 北-美간 관계개선에서도 또 남북간 관계개선에도 많은 난제들이 남아있다.그러나 지난 1년6개월동안 한반도 문제에 관여한 모든 당사자들은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워왔다.그동안의교훈을 살려 보다 더 밝은 앞길이 개척되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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