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피크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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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남태평양』『미스터 로버츠』등의 연극을 브로드웨이에서 연출,기반을 닦은 조슈아 로건 감독은 1955년 처음 영화를 만들때윌리엄 홀든의 벌거벗은 상반신 때문에 난처한 걱정거리가 생겼다.1953년 퓰리처상을 받은 윌리엄 인지의 희곡 『피크닉』(Picnic)에선 주인공 핼 카터의 벌거벗은 상반신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녀 요즈음 아널드 슈워즈네거하고는 상대도 안되지만 어쨌든 근육질 남자의 존재 가치성을 측정하는 한가지 기준으로 상징된다.
하지만 막상 영화로 찍으려니까 그때의 상황으론 가슴에 난 털을 그대로 찍어 시네마스코프 화면에 내보낼 수 없는 실정이었다.지금 들으면 믿어지지 않겠지만 40년대만 해도 미국에선 남자들도 팬티만 입고 수영할 수 없었고,여자들의 원피 스 수영복처럼 생긴 상반신을 거의 다 덮는 것을 걸쳐야 하던 시절이었다.
상반신을 벗어부친 이 영화의 포스터가 기억나겠지만,결국 면도로 가슴의 털을 말끔히 밀어버린 윌리엄 홀든(핼 카터役)은 노동절날 화물열차를 훔쳐 타고 캔자스의 어느 소도시에 도착해 밥을 얻어먹기 위해 남의 집 정원을 손질해 주는데, 그때 맞은편집에 사는 세 여자(킴 노박.수전 스트라스버그.로저린드 러셀)가 그의 벌거벗은 상반신을 보고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면서 영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핼 카터는 대학 시절 운동선수로 날렸지만 사회에 나와선 근육질 몸뚱이 말고는 별로 쓸만한 자질을 갖추지 못해 건달노릇만 하면서 떠돌다 이 도시에 사는 동창 클리프 로버트슨의 집이 부자라는 소문을 듣고는 취직자리도 부탁하고 어떻게 신세라도 질 수 없을지 해서 무작정 찾아온 몸인데,취직할 생각은 하지않고 동창의 애인 킴 노박을 육체적 매력으로 사로잡아 결국 빼앗아버리기 때문에 극적인 상황이 전개된다.
석고로 조각한 고양이같은 인상의 기막힌 미녀 킴 노박이 그 역을 맡은 여주인공은 맷지인데,이 여자의 지적인 수준을 볼 것같으면 그녀의 여동생 밀리가 피카소를 얘기하니까 이런 반응을 보이는 정도다.
『The woman with seven eyes? Beautiful(눈이 일곱개 달린 여자를 그리는 화가 말이니? 아름답기도 하더구나).』 이렇듯 막상막하인 남녀는 별로 시간도 걸리지 않고 노동절 바로 그날밤으로 대단히 자연스럽고 낭만적인,그리고 육체적인 사랑에 빠지고,이에 분통이 터진 동창 클리프 로버트슨은 핼 카터를 자신의 자동차를 훔쳐간 절도범으로 몰아 신고하는 바람에 핼 카터는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되어 다시 화물열차를 훔쳐 타고 오클라호마의 털사로 떠난다.
그리고 「안정된 미래보다 진정한 사랑을 위해」 킴 노박이 아무리 봐도 장래성이 없는 건달을 무작정 따라나선다는 줄거리다.
짚신도 짝이 있고,사랑은 눈이 멀게 한다는 등의 상식에 어긋나는 생활철학을 따르는 킴 노박은 대책없는 미래를 무작정 좇아가는 낭만파로 그려지는데,노동절 축제에서 여왕으로 뽑힌 그녀와여자를 어깨에 메고 달리며 남성미를 과시하는 윌 리엄 홀든이 조명 불빛을 받아가며 춤추는 장면은 가위 황홀의 경지에 이른다. 머빈 르로이 감독의 『애수』에서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언 리가『올드 랭 자인』(Auld Lang Syne)을 연주하며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촛불을 하나씩 꺼나가는 사이 『이별의 왈츠』를 추는 장면에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았고,프레드 어 스테어와 진저 로저스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황홀함에 있어서는 『피크닉』의 춤을 따라올 영화가 없으리라.
담배를 배우려고 콜록거리는 16세의 사춘기 소녀 수전 스트라스버그가 언니에게 뜨내기의 사랑을 좇아 고향을 버리고 떠나도록권하는 장면,남자가 탄 화물열차와 여자가 타고 쫓아가는 버스를카메라가 하늘에서 나란히 잡은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노처녀 로저린드 러셀의 히스테리 장면이 인상에 남는 이 영화는 수전 스트라스버그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安正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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