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레저>익산미륵사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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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리가 일생을 살다 떠나는 이 땅에 얼마나 아름다운 문화유산이있는지 보고 싶어요.』 최근 한 단체 답사여행을 따라나선 여학생이 차 안에서 한 말은 전북익산(금마면기양리)의 미륵사지에 도달했을때 새삼 의미있는 말로 다가왔다.
전라도 땅 한켠,내다버린 듯 펼쳐진 폐허에서 곧 무너질 듯하면서도 고색창연한 기품을 잃지 않고 서있는 미륵사지(址)석탑(국보 제11호)을 보았을때 조용한 충격과 부끄러움이 온몸을 스쳐갔다. 백제 무왕 때인 1천4백여년전 전성기를 구가했던 백제문화의 위용을 얘기하려는 듯 미륵산 남쪽 자락아래 발자취를 남긴 거대한 사찰과 탑의 흔적은 잡초더미 속에 뼈대만 남아 찬란했던 한 시대의 지난 얘기를 쓸쓸하게 전해주고 있었다.
원래 7~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현재 반쯤 허물어져 탑신의 총크기를 가늠키 어려운데 풍진 세상을 달관한 듯한초연한 모습과 탑신에 드리워진 세월의 검은 그림자는 상서로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크다는 이 탑은 그에 걸맞게 육중하면서도 각층 처마를 날개처럼 살짝 들어올려 비상하는 듯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탑 귀퉁이마다 비바람에 얼굴의 윤곽을 씻긴 石人像이 아담하고 다소곳한 자태로 서 있다.
오늘날의 건축처럼 지반공사도 대대적으로 하지 않은 것 같은데그 커다란 화강석 돌무더기들이 웬만한 빌딩 크기만한 탑(현재는14m 정도이나 원래 높이는 26m로 추정)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폐허가 된 미륵사 절터는 모두 10만여평.지난 80년 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가 있기 전까지 논밭과 민가로 덮여 있었다는 이곳에는 미륵사지 석탑의 원래 모습을 재현한 새탑인 동석탑이 세워져 옛탑과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돌에 영혼불어넣은 石工 사랑과 정성없이 기계의 힘으로 돌을 자르고 올려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드는 새탑은 멋적고 천박해 보여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진다.
이곳을 조금 벗어나면 금마면 동고도리 작은 풀동산에 2백여m의 거리를 두고 마주 서있는 2구의 석불(보물 제46호)을 만나게 된다.
광활한 평야 한가운데 서있는 이 석상은 호리한 사다리꼴 몸통에 머리에는 둥근 갓까지 쓰고 있고 각진 얼굴에 가느다란 눈,짧은 코,뾰족한 입이 무어라 말을 툭 건네올 것같은 친근한 인상을 하고 있다.가슴에 공손히 포개 모은 두 손, 몸통에 새겨진 어줍잖은 도포자락은「부조화의 조화」를 자랑해 한갓 돌덩이에체취를 불어넣으려 애쓴 옛 석공의 정성이 가슴에 다가왔다.
이곳에서 다시 3분 거리인 왕궁면에 가면 꽃분홍 목백일홍(배롱나무)이 만발한 숲속에 단아하게 자리잡은 왕궁리 5층 석탑(보물 제44호)과 만나게 된다.
아스라한 세월의 뒤안을 얘기하려는 듯 누렇게 변색된 황토빛 석탑의 은근미는 가까이 보면 장중하고 안정된 아름다움이 돋보이면서도 거리를 두고 그 모습을 대하면 탑신 전체가 날아갈 듯 경쾌해 짜임새 있는 구도와 균형미가 눈길을 끈다.
글:高惠蓮기자 사진:崔宰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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