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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의현장>14.美 아르곤연구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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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유연해야 조직이 산다.』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ANL)의 알란 슈리시하임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연구의 유연성을 강조한다.지난 84년 이 연구소의 7대 소장으로 취임한 그는 ANL의 역대 연구소장중 최장수를 기록하며 롱런가도를 달리 고 있다.돈은 국가에서 대지만 운영은 철저히 이사회의 자율로 이뤄지는ANL에서 그가 장수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유연철학」이 일단 평가받고 있다는 증거다.ANL은 최근 연구소 개소이래 최악이라 할만한 좌절을 겪었다.이 연구소가 지난 86년부터 야심만만하게 추진해온「종합고속로」(IFR)사업에 대해 의회가 1차적으로 예산의 대폭적인 삭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수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는 IFR프로젝트는 이 연구소가 전통적으로 초강세를 보여온 원자로에 관한 연구였기에 의회의 삭감안은 ANL에 적지않은 충격을 줬다.
이와함께 ANL을 더욱더 놀라게 한 것은 이런 의회의 태도에가타부타 별말이 없는 행정부의 자세였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변화를 쭉 지켜본 주변사람들은 의회나 행정부의 태도보다 충격에서 재빨리 깨어나는 ANL의 복원력,즉 유연성에 탄복했다.ANL은 물밑에서 對의회.對정부 로비를 계속하는 한편 클린턴 정부가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 았다는 듯 연구과제들을 새롭게 정비했다.돈을 대주는 정부의 입맛에 맞춰 연구방향을 잡은 것이다.
슈리시하임 소장은『사람들이 아르곤의 연구 결과를 통해 곧바로혜택을 입을 수 있어야 한다』며『환경보호와 시민의 건강.안전부문에 1백25억달러(약 1천억원)를 쏟아붓겠다』고 말했다.이같은 말 속에는 각종 원자로를 개발,세계의 원자력 발전에 적지않게 공헌해온 ANL의 그간 업적에 「민생과학」을 접목,과학기술의 전분야에서 일류 연구기관으로 도약해보겠다는 의도도 깔려있다. ANL의 유연성은 미국 특유의 자유로운 연구분위기와 맞물려연구효율을 증대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이곳의 한국인 학자柳會斗씨(41)가 벌이는「금속과 전해질의 계면구조에 관한 연구」는 ANL의 유연성을 잘 보여주는 한 사례다.
수년전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에 근무하다 이곳으로 옮겨온 柳박사는 「물리연구부」소속 연구원이다.
그러나 그는 이 연구를 같은 소속부서원이 아닌「엔지니어링 연구부」의 졸탄 네이기박사와 벌써 5년째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두 사람이 공동연구를 하게된 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줄 만한 동반자를 찾다 만나 팀을 이뤘다.꽁하니 혼자만 연구과제를 주물럭거리려는 일부 국내학자들과의 폐쇄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서로 동반자를 잘 만난 탓인지 이들의 연구는 지난해 10월 시카고大의 평가팀으로부터도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다.
柳박사는『과학자는 마음이 닫혀 있어서는 안된다』며『정보를 자유롭게 주고 받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그는연구소측에서도 전공이 다른 학자들간의 이런 자유로운 공동연구를크게 장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ANL의 최근 변화중 하나는 기업과의 공동연구를 크게 늘려나가고 있다는 것이다.이 연구소는 92년까지만 해도 기업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확보한 예산이 전체의 5%미만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수치는 최근들어 급격히 증가하는 조짐을 보이고있다.ANL은 지난해 크라이슬러.포드.GM 등 3사의 컨소시엄으로부터 7백30만달러(약 60억원)짜리 프로젝트를 따냈다.전기자동차의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들 3사가 이 자동차의 핵심이라할 만한 전기배터리의 개발을 의뢰해 온 것이다.
이외에도 ANL은 지난 한해 미국내 기업.대학 등 17개 기관과 공동연구협약에 서명함으로써 연구의 폭을 크게 넓히고 있다.이로써 ANL이 공동연구협약을 맺은 기관은 총 35개로 늘어났다. ANL은 또 기업등으로부터 유망한 과학기술자를 받아들여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쳐줌으로써 연구소에서 기업으로의 기술이전을촉진하고 있다.일리노이주 네이퍼빌의 패커 엔지니어링社는 이런 케이스로 덕을 톡톡히 본 기업.이 회사는 기술자 한 사람을 ANL의 슈퍼컴퓨터 프로그램밍 파트에 파견,훈련시킨 뒤 이 기술자를 주축으로 사업을 벌여 2백50여명을 추가고용할 만큼 사업에서 재미를 보고 있다.
***연구원 정보교류 활발 『세상이 변화면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아르곤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슈리시하임 소장의 ANL이 산.학.연 협력과 기술의 상품화를 유난히 강조하는 시대의 변화에 또 어떤 모습으로 적응할지 과학계가주목하고 있다 .
[아르곤(美일리노이州)=金昶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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