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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한국 돌아온 ‘삼포 가는 길’의 배우 문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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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975년 TBC-TV 드라마 ‘하얀장미’에 출연한 문숙.

문숙(53)이란 영화배우가 있었다. 스무 살 때(1974년) 그는 이만희 감독의 영화 ‘태양 닮은 소녀’에 캐스팅됐다. 그리고 이듬해 ‘삼포 가는 길(75년 작)’의 주인공도 맡았다. 백상예술상(74년)도 받고, 대종상 신인상(75년)도 받았다. 당시 영화계의 ‘떠오르는 신데렐라’였다.

 영화를 찍으며 그는 이 감독과 사랑에 빠졌다. 스물세 살 연상의 이혼남을 가슴 절절히 사모했다. 교외의 백양나무 숲에서 ‘둘만의 결혼식’도 올렸다. 그러나 이 감독은 1975년, 사귄 지 1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갓 스물을 넘긴 문씨는 슬픔과 고통에 허덕였다. 삶의 이유도 잃고 말았다. 그래서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30년. 그가 돌아왔다. 책 『마지막 한해』(창비)도 냈다. ‘이만희 감독과 함께한 시간들’이란 부제가 달린 책에서 그는 “내 안의 상처가 이제야 진주가 됐다”고 짤막하게 말했다.

서울 북촌의 한 찻집에서 만난 영화배우 문숙(53)씨가 양손을 모으며 요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양영석 인턴기자]

 궁금했다. 그가 겪은 사랑과 절망, 상처와 고통은 인간이라면 ‘누구나의 몫’이다. 그런 ‘상처’가 어떻게 ‘진주’로 바뀌었을까. 알고 보니 그동안 그는 자신을 찾는 구도(求道)의 길을 걷고 있었다. 수행 방법은 명상과 요가였다. 최근 서울 북촌의 한 찻집에서 잠시 귀국한 그를 만났다. 치장 없는 반백의 긴머리, 그는 나무처럼 나이를 먹고 있었다.  
 -왜 미국으로 갔나.

 “당시 나는 스물한 살이었다. 그런데 목숨을 거는 사랑을 했다. 삶이 끝난 줄 알았다. 낯선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내 삶의 흔적, 고통의 흔적이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갔더니 없어졌나.

 “그렇지 않다. 내가 어디를 가든 기억도 따라왔다. 기억이 오면 상처도 오고, 상처가 오면 고통도 왔다. 그때 알았다. 기억은 내 몸속에 있었다. 고통은 밖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어찌했나.

 “‘나’를 찾기 시작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미국에서 이런저런 종교도 찾아봤다. 그런데 왠지 편하질 않더라. 불편했다. 그런데 내가 가장 편안해졌던 곳은 ‘자연’이었다.”
 -좀 더 설명해 달라.

 “나무에는 우리가 모르는 커다란 지혜, 커다란 에너지가 있다. 큰나무 아래 앉아 보라. 그럼 느껴진다. 사람이 가르쳐줄 수 없는 ‘지혜’가 가슴으로 ‘툭!’하고 떨어짐이 느껴진다. 미국의 레드우드 숲에선 그 속으로 푹 잠기는 경험도 했다.”

 -그럼 그걸 찾아야 하지 않나.

 “그래서 요가를 시작했다. 교회에서 들은 성경 말씀도 너무 좋았다. 그런데 내가 ‘하나’가 안 되더라. 남방 불교의 ‘위파사나’ 수행도 5년 이상 했다. 그런데 나와 ‘하나’가 안 되더라. 큰 나무와, 거대한 숲과 하나가 되듯이 그렇게 ‘하나’가 되고 싶었다. 내 안의 상처도 그럴 때 아물었다.”

 -그럼 요가에선 ‘하나’를 찾았나.

 “미국 산타페에서 요가 선생을 만났다. 그는 ‘내 몸이 기도문이 된다. 내가 영적 에너지(Spiritual energy)에 대한 통로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걸 체험했다. 그렇다고 다른 종교나 다른 방식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이 방식이 나와 맞았던 거다.”
 -한국에선 ‘요가’하면 ‘다이어트’를 떠올린다. ‘살빼기 방법’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요가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힌두에는 여러 신이 있다. 요가의 신은 ‘시바’다. ‘시바’는 버리는 신, 파괴의 신이다. 기독교의 ‘회개’, 불교의 ‘참회’처럼 요가는 철저하게 ‘나’를 버리는 과정이다. 육체적인 움직임을 통해 ‘나’를 버리는 작업이다.”

 -예를 들면.

 이 물음에 그는 두 팔을 위로 쭉 뻗었다. 그리고 옆으로 몸을 쭈~욱 기울였다. “이렇게 움직이면 ‘땡김’이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게 ‘텐션(tension, 근육의 긴장)’이다. ‘텐션’이 많다는 얘기는 그동안 모여 있던 생각이 많다는 얘기다. 그런 생각이 바로 ‘바람’이다. 나도 생각이 많고, 바람이 많이 부는 스타일이다. 요가는 그 바람을 고르게 하면서, 잠재우는 과정이다. ‘텐션’은 에고(자아)에 대한 조그만 경호원(Little guard)이다. 그걸 열어야 한다.”

 -어떻게 여나.

 “몸을 움직이다 텐션이 오는 지점에서 멈추라. 그 자세에서 길게 숨을 내뱉고, 들이마시는 걸 반복한다. 그럼 잠시 후에 텐션이 풀린다. 몸은 더 움직여진다. 그리고 그 다음 텐션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수많은 텐션, 수많은 에고를 만나고 열어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에는 ‘수퍼에고’를 만나게 된다.”

 -‘수퍼에고’를 만나면 어찌 되나.

 “‘빅 마인드(Big mind)’가 된다. 마음이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의식 확장이 일어난다는 얘기다. 거기서 지혜도 나오고, 고요함도 나온다. 그런데 사람들은 ‘수퍼에고’를 만나면 끝난 줄 안다. 그렇지 않다. 끝이 아니다. 거기야말로 진정한 출발점이다.”

 -석가모니 부처도 요가를 하셨나.

 “그렇다고 한다. 요가를 오래 하면 자연스레 위파사나와 연결된다. ‘앉아서 안 일어나겠다’고 작심하는 포즈가 바로 ‘연꽃 포즈’다. 그게 요가의 포즈다. 바로 부처가 앉은 자세다.”
 -요가에선 ‘나’를 무엇으로 보나.

 “에너지로 본다. 불교의 선종에선 ‘손가락’과 ‘달’을 얘기한다. 요가에선 몸을 이용해(Physically) 그 길을 가는 것이다. 매일 매일 ‘나’를 떠나보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좋은 것’도 떠나보내고, ‘나쁜 것’도 떠나보낸다. 그중 ‘좋은 것’을 떠나보내는 게 훨씬 힘들고 어렵다.”

 -그렇게 다 버린 뒤에는 어찌 되나.

 “이 거대한 우주는 에너지 그 자체(Energy itself)다. 다 버리면 그 우주와 만나게 된다. 그때는 나와 우주의 에너지가 하나가 된다. 그렇게 하나로 흐른다. 그 에너지는 살아 있고, 의식이 있고, 지혜가 있다.”

 -에너지와 ‘하나’가 된 다음에는 어떻게 사나.

 “중요한 물음이다. 산속에서 정말 좋은 경지에 들면 세상에 내려오려 하질 않는다. 그런데 그건 아니다. 내려와서 사람들의 잠자는 에너지를 깨워야 한다. 그러나 ‘하나’가 됐다고 대단한 영웅이 되는 건 아니다. 늘 북적거리는 뉴욕 5번가의 신호등 앞, 인파 속에서 파란불을 기다리는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럼 당신 삶의 상처와 고통은 지금 어디에 있나.

 “예전엔 ‘이만희 감독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찌 됐을까’란 생각을 많이 했다. 이후에 내 삶이 너무 참담해졌으니까. 이젠 ‘만약’이란 ‘왓 이프(What if)’를 묻지 않는다. 그냥 그 ‘사건’을 내 삶의 궤도로 받아들인다. 또 그 궤도로 인해 내가 지금 여기에 서 있다. 세상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에너지가 생겼다. 그렇게 보니 내 삶이 아름답더라. ‘상처’가 아니라 ‘진주’더라.” 

백성호 기자

문숙 누군가

1954년 경기도 양주 출생이다. 고교생 때부터 TV드라마에 출연했다. 74년 이만희 감독의 영화 ‘태양 닮은 소녀’에 캐스팅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75년에는 이 감독의 영화 ‘삼포 가는 길’에서 여주인공을 맡아 그해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이 감독 작고 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화가로 활동하며, 명상치유의학과 자연건강음식을 공부했다. 또 직접 강좌를 열 만큼 요가의 전문가가 됐다. 현재 미국 하와이의 마우이 섬에 거주하며 명상과 치유 활동에 힘쓰고 있다. 그는 "내가 받은 햇볕만큼 그을린얼굴과 자연처럼 물드는 흰 머리카락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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