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찰싹 붙은 홍합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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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바닷가에 가 보면 파도에 흔들리지 않고 바위나 부두에 강력하게 붙어 있는 홍합을 쉽게 볼 수 있다. 홍합은 접착제와 같은 섬유조직을 만들어내는 유별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홍합의 섬유조직은 사람의 힘줄보다 5배나 질기고 16배나 잘 늘어나는 자연의 신소재다.

홍합의 섬유조직에 숨어 있는 과학적 사실이 미국 퍼듀대의 화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이 대학 조너선 월커 박사팀은 홍합이 섬유조직을 만들 때 철 이온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내고, 연구결과를 세계적으로 저명한 화학 학술지 '안게반트 케미(Angewandte Chemie)' 1월호에 발표했다.

홍합의 섬유조직은 아미노산에서 변형된 디하이드록시페닐알라닌(DOPA)을 모태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철 이온이 DOPA의 산소원자와 붙기 시작하면서 여러 DOPA 물질에 둘러싸여 구심점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백질 전체에 반응성이 높은 활성물질이 형성되면서 아무리 딱딱한 표면과도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 윌커 박사의 추측이다.

홍합의 섬유조직 연구는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실생활에 접목 중이다. 가장 시장성이 큰 분야가 실을 쓰지 않는 외과용 접합제. 윌커 박사 또한 "우리는 홍합의 섬유조직을 외과용 접합제로 사용하거나 이 시스템을 응용한 합성 접합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며 "앞으로 1~2년 뒤면 수술실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홍합의 섬유조직은 본드와 같은 화학제품 접착제와 달리 독성이 없을 뿐더러 물기가 있는 환경에서도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 5년 전쯤 국내에서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팀이 대장균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낸 홍합의 섬유조직으로 수술용 생체 접합제를 개발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윌커 박사의 연구결과는 항만의 수질오염 정도를 상당부분 낮춰줄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구리가 포함된 페인트를 선체의 바닥에 칠해 홍합과 같이 바닥에 들러 붙으려는 생물들을 애벌레 단계에서 박멸하는 방법을 사용해왔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항만 수질은 구리 함량 허용치를 넘어선 지 오래라는 보고도 있었다. 철 이온과 반응성이 매우 높은 물질을 선체의 바닥에 칠해 홍합이 섬유조직을 만들어내지 못하도록 한다면 보다 환경친화적인 페인트의 개발도 가능할 전망이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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