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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68.거기 그녀가 서 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건영이 소주잔을 들고 한번에 들이키고는 『너도 한 잔 해』라고 했다.손님이 왔으니까 대접을 해야지 라면서,건영은 하숙집 입구의 구멍가게에 들러서 소주 한 병과 오징어를 사들고 들어온거였다. 『그렇지 뭐.써닌… 아주 괜찮은 애였거든.』 『콩은 깐 거야?』 『뭐라구? 그게 뭔데….』 『뚫었냔 말이야.이거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까 아주 답답하네.…따먹었냐구?』 나는 건영이 써니를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그렇다고 건영이 써니를 함부로 여겨서 그러는 것같지는 않았다.
『그렇지 뭐.그러니까… 딱 한 번 그러긴 했는데… 써니는 날라리나 그런 애는 아니야.너도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말이야.』『그럼 아다였다 이거네.』 나는 잠깐 「아다」가 무슨 말일까 생각해보다가 대강 알아듣는 척했다.
『그렇지 뭐.… 맞어.그랬어.날라리가 아니라니까.』 『미련 갖지 말구 다른 계집앨 찾아보는 게 낫잖아?』 『아냐,그건 니가 그앨 몰라서 그런 소릴 하는 거라구.정말야.』 『달수 너…아주 순정파네.』 건영이 날 쳐다보면서 빙그레 웃었다.비웃음이아니라,그건 칭찬과 부러움과 찬탄과 그런 것들이 배어 있는 웃음이었다.건영은 소주 한 잔을 또 비우고 나서,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윽고 말했다.
『다꾸라는 놈한테 가서 물어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몰라.언젠가계집애들 잡아다 파는 새끼들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 『다꾸라니…?』 『별명이야.다꾸앙을 줄인 거지 뭐.가게 나가는 놈이거든.호스트 바 말이야.지금은 일 나가고 없을 거야.주말엔쉬니까 그때 만나봐.내가 미리 전화해 놀게.』 『호스트 바 라는 데… 거기 나가서 무슨 일을 하는 건데…?』 『정말 답답허네.거기 놀러오는 아줌마들 기분 맞춰주고 일당 받는 거지 뭐.
꿩 먹고 알 먹는 장사 몰라.넌 텔레비전 뉴스도 안보냐.』 난너무나 놀라는 얼굴을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표정을 다스렸다. 『근데 여자들이 진짜 같이 가서 자자고 그러지는 않을 거야,그치?』 『글쎄 그런 건 다 알 필요 없잖아.너흰 좋은 대학에 갈 생각이나 하면 되는 거잖아.넌 써니라는 계집애만 찾으면 되는 거구.세상 참 복잡한 데라니까 그러네.』 건영이 써주는 다꾸의 전화번호를 받아들고 집에 돌아오는데 자꾸만 이상한 장면들이 연상됐다.술 취한 여자가 침대에 벗고 누워서 어서 올라오라고 다꾸에게 애원하는 장면…,뭐하는 거야,빨리 와.빨리 와서 해줘.
거리에서 만나는 여자마다 다 의심이 가는 거였다.저 여자들도그런 데 가봤을까,자꾸만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드는 거였다.여자들의 표정으로 봐서는 절대로 그럴 리가 없었다.도저히 믿어지지않는 일이었다.
호스트 바 같은 데 가서 돈을 주고 어린 남자애들과 놀아날 것같은 여자는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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