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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지구상에 단 하나’ 나만의 책 직접 만들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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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만들어놓으면 어떨까. 플랩북 형태로 만든 체험학습보고서

책공방 북아트 센터를 방문한 아이들이 책 만드는 법에 대해 강의를 듣고 있다 강정현 기자

수집이 취미인 한 친구가 말하길 “아이들에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유산을 물려주고 싶다면, 어린 시절부터 아이의 삶을 기록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주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무리 값비싼 선물도 시간이 지나가면 그 가치가 희미해지지만, 아이가 지나온 시간을 소중하게 기록해 장성했을 때 자료로 남겨주는 일은 부모만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선물이 아니겠느냐고. 프랑스에 유학을 갔던 또 다른 친구는 강의시간에 ‘어릴 적 가장 귀하게 여겼던 물건을 가지고 오라’는 교수의 말에 정말 난감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몇 번의 이사와 정리로 어릴 적 물건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과 학생들은 딴판이었다. 그들이 갖고 온 때가 꼬질꼬질한 인형, 귀퉁이가 너덜너덜한 앨범, 수십 권에 달하는 일기장을 보고 친구는 많이 놀랐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집갈 때 엄마가 내민 두툼한 앨범이 생각났다. 그 속에는 어린 시절의 사진과 상장, 성적표, 심지어 고사리 손으로 엄마에게 썼던 어버이날 카드도 들어 있었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하는 시간도 많아지고, 나들이를 통해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도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사진과 입장권, 팸플릿 등을 블로그에 날짜별로 정리하는 것도 좋지만, 방학 때 과제나 체험학습보고서 등의 준비를 위해서는 이런 자료들을 좀 더 전문적으로 정리해보면 어떨까. 바로 ‘내 아이만의 포트폴리오’다. 멀리 내다보면 상급학교 진학 때 그 어떤 ‘자기소개서’보다 경쟁력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

포트폴리오 만들기에 도움을 얻기 위해 11일 서울 잠원동 책공방 북아트 센터(http://bookworks.co.kr)를 찾았다. 가기 전 아이와 어떤 컨셉트의 책을 만들고 싶은지 의논했다. 아이는 “그동안 다닌 책 나들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스크랩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책공방에 미리 예약을 한 후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지 컨셉트를 말해줬다. 관련 사진과 자료들을 챙겼다.

책공방 북아트 센터는 책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자재들로 빼곡히 채워진 곳이었다. 이곳 김진섭 대표의 지도로 스크랩북을 만들었다. 각자 생각한 개념에 맞게 미리 준비된 종이를 오리고 접고 풀칠했다. 김 대표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도 덤으로 들을 수 있었다.

“책은 쓰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그 책이 손에 잡히게끔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중요합니다. 유럽에서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장인’이라 부르며 귀하게 대접합니다. 예전에는 책을 일일이 손으로 쓰고 그리고 만들어야 했거든요.” 이어지는 아이의 질문.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다 자기 손으로 책을 만들었잖아요?”

그러자 김 대표의 대답. “고려시대 가장 유명한 수출품이 도자기·비단·종이였을 만큼 우리나라의 종이 만드는 기술은 뛰어났고 종이로 못 만드는 것이 없을 만큼 그 쓰임새가 다양했어요. 서양문물이 전해지면서 점차 우리 종이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책 만드는 기술도 대량생산으로 인해 더 이상 대접받지 못하게 됐지요.”

그는 유럽의 책 장정 공방을 방문했을 때 누구나 읽는 그런 책이 아닌 나만의 단 하나의 책을 만들기 위해 예술가 못지않은 노력과 정성을 쏟는 모습을 보면서 책 공방을 만들기로 결심하게 됐단다.

어느새 책의 속지를 다 접은 아이는 가져온 사진들을 뒤적이며 어떤 것을 붙일까 고민했다. “엄마, 여기서 마신 코코아 정말 맛있었지?” 아이가 고른 것은 북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아이와 지난 나들이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도 책 만드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시간이다.

열심히 사진을 붙이고 책 표지를 색연필로 예쁘게 꾸몄다. 문방구에서 산 스티커로 여기저기 장식을 하고 나니 제법 멋진 스크랩북이 완성됐다. “아이들이 작아서 못 입는 옷으로 책 표지를 만들어도 좋습니다. 환경교육도 더불어 되는 셈이지요. 집에서 만들 때는 이런 재활용 재료들을 많이 이용하면 더 정감 가는 책이 탄생하게 됩니다.”

지금은 작아졌지만 아이가 너무 좋아했던 옷이라 버리지 못하고 서랍 구석에 넣어둔 원피스가 생각났다. ‘다음 번엔 그 원피스로 아이에게 일기장과 독서기록장을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끼던 옷으로 만든 일기장에 글을 쓸 때마다 더 애착이 가지 않을까.

완성된 책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서 아이와 함께 종이와 문자의 역사가 나와 있는 책을 찾아 읽었다. 아이는 “다음 번에는 내가 그린 만화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며 좋아했다.

홍준희(나들이 칼럼니스트)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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