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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과 주가, 앞으로는 어떨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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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23면

이종우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

신중론

“고속도로를 더 달리긴 어렵다”

이종우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에게선 투자자들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이 묻어났다. 그는 강세장 속에서 꺼내기 어려운 말들을 소신껏 토로했다. 그 역시 기업들의 장사가 앞으로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데 수긍했다. 하지만 아무리 실적 개선이라는 탄탄대로가 열려도 너무 오른 주가가 결국 부메랑이 될 것을 우려했다.

여기저기서 울리는 기업들의 풍악(風樂) 소리에 투자자의 관심이 온통 실적에 쏠린 12일 이 센터장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경기가 1년 반 동안 솔솔 살아나면서 그 덕을 톡톡히 맛보는 중”이라고 했다. 한국 경제의 체력 회복이 뻥뻥 뚫린 실적 고속도로를 닦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11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4%에서 4.9%로 끌어올렸다.

이 센터장은 “아시아 신흥국가의 성장세도 도움을 줬다”고 했다. 한국의 수출이 해바라기처럼 미국만 바라보던 신세에서 벗어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으로 다극화하고 있는데 개도국 경기가 좋아 국내 기업들의 금고도 꽉꽉 채워졌다는 얘기다.
실적은 본디 주가의 거울이다. 돈 잘 버는 기업에 투자가 몰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호시절이 계속될까. 이 센터장은 ‘노(No)’라고 했다. “현대중공업을 보세요. 올해 실적 추정치로 주가수익배율(PER)이 26배쯤 됩니다. 시장 평균이 14배입니다. 현대중공업 주가가 그만큼 과대평가됐다는 얘기지요.” 그는 “실적이 뒷받침되는 건 사실이지만 주가가 훨씬 빠른 속도로 질주해 더 이상 가속 페달을 밟긴 어렵다”고 했다. 특히 실적 개선과 주가의 선순환 궁합이 4분기 중반 이후까지 이 속도로 달리긴 어렵다고 했다.

브레이크가 걸리면 악몽 같은 ‘조정’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이 센터장은 “4분기까지 코스피지수가 2100포인트를 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조정이 오면 ‘얻어터질 것’이고, 심하면 1800포인트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실적의 착시’도 우려했다. “올 초 낮았던 이익 전망이 연말로 가면서 더 좋아지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애널리스트들의 추정에 오차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봐야 해요.” 지난 2년간 재미를 못 봤기에 연초 기대치를 낮춰 잡았다가 이를 뛰어넘는 성적표가 공개되니 환호성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장에선 조선·철강주 같은 중국 관련주의 바통을 ‘정보기술(IT)과 금융’이 넘겨받아 상승 펌프질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센터장도 구원투수 역할을 할 업종이 IT·금융 정도라는 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두 업종이 달릴 도로는 장애물도 많고 더딘 길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실적 발표에서 LG필립스LCD나 삼성전자 이익이 좋게 나왔지만 반도체를 포함한 IT 제품 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어요. 수요가 많지 않으면 이익도 줄기차게 늘 수 없지요.” IT 종목이 이런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단순히 경기 사이클이 조금 좋아진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했다. 과잉설비를 해소할 구조적인 외과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금융은 상대적으로 유리하긴 합니다. 자본시장통합법이 증권사들의 실적 증가 산파역을 할 것으로 보이고, 은행도 금융자산이 늘 겁니다.” 그러나 올해 중국 관련주가 보여줬던 ‘고속 레이스’ 대신 느릿한 속도를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친김에 그에게 ‘중국 시장은 계속 올라가겠느냐’고 물었다. 이 센터장은 “중국 증시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도 모른다고 하지 않습니까.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라고 했다. 누구나 불안해하면서도 돈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 증시는 평균 PER이 55배에 이릅니다. 본격적인 조정을 받으면 낙폭은 10%, 20% 이런 수준이 아닐 거예요. 만약 30% 조정을 받아도 PER이 여전히 40배로 고평가 상태입니다.” 그는 “중국이 10%씩 성장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렇다면 2001~2005년까지 고속성장을 하는 동안 50% 이상 빠진 주가는 어떻게 설명하겠느냐”고 했다.

그는 지금 ‘부자 조급증’이 시장을 배회한다고 걱정했다. 3월부터 8월까지 지수가 5
0% 급등하면서 투자자들이 ‘나도 빨리 뭔가 해야 한다’고 불안해한다는 얘기다. 이 센터장은 “무엇보다 외환위기 이후 ‘채권→부동산→주식’으로 모든 자산의 가격이 한 순번 돌면서 올랐고 곳곳에서 부자가 나오면서 ‘나는 소외됐다’고 여기는 사람도 비례해 늘었다”고 했다. 고속도로에서 앞선 차를 따라잡으려다 닥치는 사고의 대가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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