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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유엔사령관이 설정한 NLL 북한도 인정한 '54년 관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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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국제법적으로 영해를 규정하는 경계선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으나 사실상 북한 당국도 받아들인 현실적 경계선이었다.

어떻게 생기게 됐을까. NLL은 1953년 정전협정 서명 직후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설정했다.

정전협정에선 전쟁 전 남북 경계선에 근거해 서해의 섬들에 대한 관할권을 나눴다(제2조 13항). 당시 유엔군은 북한의 군수물자가 집중돼 있던 서해 연안에서 압도적 제해권을 갖고 있었으나 협정 체결을 위해 양보한 것이다.

유엔군은 북위 38도선 북쪽 지역의 섬에서 철수했다. 바다를 봉쇄한 상태에선 휴전이 성립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클라크 사령관은 38도선 아래의 일부 섬까지 북한에 내줬다. 문제는 해상 경계선 설정에 합의하지 못해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발적 충돌을 우려한 클라크 사령관이 NLL을 일방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북한은 53년 이후 20년 동안 NLL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준수했다. 63년엔 북한 간첩선 문제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북한 대표가 "우리 배는 NLL을 넘어간 적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실질적으로 관할권을 받아들인 것이다. 73년 들어 북한은 백령도.연평도 인근 NLL을 43차례 넘나드는 등 NLL을 분쟁수역화하려 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84년 수해물자를 싣고 오가는 선박의 통행 기준선을 논의할 땐 NLL을 해상 경계선으로 인정했다.

92년 남북기본합의서 제11조에선 "남북 불가침 경계선은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93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NLL을 기준으로 한국의 비행정보구역을 수정했을 때도 북한은 토를 달지 않았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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