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돌아온 히피 패션'유행예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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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① 페라가모의 실크 블라우스와 나팔바지(모델 캐롤리나 판톨리아노) ② 페라가모의 니트와 나팔바지(샤넬 이만)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쇼(2008 봄·여름)에 ‘초원의 집’이 재현됐다. ‘초원의 집’은 1974년부터 미국에서 방영됐고 우리나라엔 70년대 후반 소개돼 80년대까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다. 한적한 시골 소녀들은 프릴(네크라인이나 옷단, 소맷부리에 주름 잡은 천을 달아 장식한 것)이 많이 달린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초원을 뛰어다녔다.

지난달 22~29일 밀라노 패션쇼 런웨이에는 형형색색의 꽃무늬가 새겨진 원피스를 입은 70년대풍 소녀들이 가득했다. 자연과 자유를 사랑했던 70년대 히피의 단골 의상 ‘나팔바지’도 무대를 장식했다. 21세기에 맞춰 새롭게 해석된 ‘30년 전의 패션’을 현장에서 살폈다.

③ 프라다의 꽃무늬로 된 인도풍 블라우스와 바지(아디나 포리츠) ④ 디앤지의 꽃무늬 드레스(크세니아 케이)

#‘나팔바지’다시 뜬다

내년 봄·여름 ‘옷 좀 입는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꽃무늬 프린트 옷 하나는 장만해야 할 것 같다. 디앤지를 비롯해 돌체&가바나·조르조 아르마니·구찌·프라다·모스키노·블루마린·로베르토 카발리 등 많은 디자이너가 꽃을 모티브로 한 의상을 선보였다. 블루마린·디앤지가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살렸다면, 구찌는 우아함을 드러냈고, 프라다는 꿈을 꾸듯 환상적인 느낌을 연출했다. 돌체&가바나는 드레스 천을 캔버스 삼아 아름다운 꽃 그림을 그려냈다.

70년대 유행 의상인 통 넓은 ‘나팔바지’도 유행을 예감했다. 최근 몇 년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던 스키니 바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프라다의 나팔바지는 정강이 아랫부분이 치마로 보일 만큼 통이 넓었다. 페라가모·디스퀘어드·마르니 등도 나팔바지 대열에 합류했다. 소녀들이 주로 찾는 마르니가 화려한 원색으로 깜찍함과 단순미를 강조했다면, 페라가모는 여성적 느낌을 부각시켰다. 하늘거리는 소재 표현에 중점을 두었다.

⑤ 프라다의 니트와 부푼 형태의 치마(라라 스톤) ⑥ 블루마린의 러플 장식 원피스(보비 와인즈)

#반갑다! 1970년대

꽃무늬는 자연을 상징하는 디자인이다. 70년대 히피들에겐 ‘평화의 상징’으로 통했다. 나팔바지 역시 히피 스타일이다. 꽃무늬가 가장 화려했던 디앤지의 패션쇼 무대 뒤로는 흑백TV 더미가 설치되기도 했다. 패션 평론가 니콜 펠프스는 “디자이너들이 히피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신세계 패션연구소 강명란 팀장도 “40년대 인기를 얻었던 나팔바지가 70년대 히피들에게도 사랑받았다”고 설명했다.

왜 갑자기 히피 패션일까. 전문가들은 자유를 추구했던 히피와 정신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요즘 사회 사이의 공통점을 주목한다. 삼성패션연구소는 70년대 복고 현상을 분석한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보고서는 “패션의 복고 트렌드는 히피 문화가 배경”이라며 “특히 부와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누리려는 새로운 상류층인 ‘보보스족’, 최근 부상한 ‘욘족’(자선사업 등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젊은 부자) 등이 히피의 자유로운 정신을 추구한다”고 분석했다. 해외 컬렉션에 나오는 대부분의 의상도 이러한 ‘젊은 부자’를 1차 고객으로 삼고 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⑦수영복 ⑧민소매 미니드레스(저스트 카발리) 등에 다양한 소재의 뱅글을 어울리게 했다. ⑨ 구찌와 ⑩ 에트로 등 많은 브랜드가 스트랩(끈)을 응용한 신발을 선보였다.

#구두도 자연스럽게

액세서리에서도 많은 변화가 시도됐다. 가장 눈에 띈 것은 고리 장식물인 뱅글. 소매를 드러내는 의상이 많은 봄·여름 패션의 필수품처럼 제시됐다. 모델들은 많게는 한쪽 팔에만 10개씩 걸기도 했다. 구두 굽은 낮아졌다. 전보다 자연스러워진 분위기다. 예컨대 20㎝나 되는 아찔한 높이의 하이힐이나 투박해 보이는 청키힐 구두는 사라지고, 힐은 10~15㎝ 안팎으로 낮아졌다. 굽이 아주 낮은 스트랩(끈) 슈즈도 많이 선보였다. 극단적으로는 에트로의 로마 병정 스타일에서부터 디앤지의 ‘조리’(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에 끼워 신는 샌들)까지 다양한 모양새였다.

밀라노=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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