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순씨 자택서 압수 60억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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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신정아씨 사건 수사의 유탄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서부지검은 지난달 28일 신씨의 횡령혐의를 확보하기 위해 박문순(53.여) 성곡미술관장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때 전혀 예상치 못한 60억여원의 괴자금을 발견했다. 법원이 지난달 18일 신씨에 대한 1차 구속영장을 기각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 돈이다. 당시 신씨가 학력 위조 혐의만으로 구속됐을 경우, 세인의 관심이 줄어들면서 검찰도 신씨의 횡령혐의 규명에 소극적이었을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박 관장의 남편인 김석원(62.전 쌍용그룹 회장) 쌍용양회 명예회장이 관리해 온 비자금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8일 압수했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씨에 대한 신병처리를 끝낸 뒤 이 돈의 소유주와 출처, 조성 경위를 본격 수사할 방침이다.

김 명예회장은 과거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한 적이 있다. 1992년 12월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자금 200억원의 관리를 부탁받고, 이 돈을 주식으로 전환해 운영했다. 그러다 96년 4월 검찰의 전직 대통령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적발됐다. 검찰은 당시 전액 추징하려 했으나 김 명예회장이 반발하면서 법정분쟁으로 비화했다. 대법원은 2001년 "국가에 원금 200억원에 이자를 포함한 298억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확정판결을 내렸지만 쌍용그룹이 공중 분해되는 바람에 제대로 환수하지 못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노 전 대통령이 김 명예회장에게 맡긴 비자금.이자 298억5000만원에 대해 추심 절차를 진행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96년 비자금 수사 당시 압수했던 66억7000만원 외에 지금까지 추가로 수십억원을 회수했고, 김 명예회장의 주식.부동산에 대한 추가 압류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괴자금이 김 명예회장이 횡령한 옛 쌍용그룹의 비자금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98년 쌍용양회 등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때 계열사 소유 부동산을 헐값에 팔아 넘기는 방식으로 31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2005년 3월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때 빼돌린 자금의 일부일 수 있다는 것이다.

60여억원이 노 전 대통령이나 옛 쌍용그룹의 비자금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전액 국가로 귀속시킨다는 게 검찰 방침이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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