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풍노인 등에 업혀가 弔問-北왕래 中보따리장수의 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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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처음 김주석의 사망소식을 접한 것은 언제인가.
『8일저녁이었는지 9일 오전인지 기억이 분명치 않은데 하여간9일낮12시에「특급방송」이 있으니 모두 시청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당시 대부분 북조선 사람들은 지난달말에 있었던 김주석과 미국의 前대통령인 카터가 만나 회담한 내용을 방송하는 것이라고생각했었다.』 -사망 발표시 북한주민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온마을이 떠나갈듯한 울음바다였다.아이고 어른이고,남자고 여자고간에 모두들 땅을 쳐대며 몸부림쳤다.그렇게 애통해 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毛澤東주석이 사망했을 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비통한 분위기였다.』 -북한 사람들의 눈물이 진짜였느냐고 의문을 표시하는 외국사람들도 많은데….
『나도 중국으로 돌아와서 그같은 눈물이 정말이었느냐고 묻는 한국과 대만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그 사람들이 북조선사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가볍게 던진 질문이다.내 생각에는 분명 진짜눈물이다.』 -김주석이 경제를 일으키지 못해 고생하고 있는데도 진짜 눈물인가.
『모르는 소리마라.북조선사람들은 자신들이 고생하는 것이 미제의 침략에 대비해 전비를 갖추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또 김주석은 자신들의 고생을 아랫사람들의 허위보고 때문에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즉 도나 시의 책임자들이 문책이 두려워 모두들 잘살고 있다고 김주석에게 거짓 보고한다는것이다.사실 얼마전엔 이처럼 허위보고를 일삼은 한 市책임자가 쫓겨났다.김주석에 대한 충성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북한에선최근 극심한 식량난에 못이겨 戰備로 마련했던 군량미를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나눠주는 게 아니라 오래된 군량미를 교체하는 것이다.북조선에선 10년치 군량미를 비축,해마다 비축된지 10년째되는 군량미를 주민들에게 풀고 새 쌀로 대체하는 작업을 하는데 아마 이를 두고 말한 것일 게다.』 -김주석사후 왜 바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장사할 분위기가 아니어서 사실 곧바로 돌아오려했다.
한데 해관을 지키던 북조선 병사가「당신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장례식도 안치르고 가느냐」며 면박을 주기에 하릴없이 되돌아갔다.중풍으로 쓰러져 몇년째 바깥출입도 못하던 노인네가 자식 들의등에 업혀 참배하러가는 분위기였다.나도 참배했다.』 -모두들 꽃을 준비하는데 어디서 조달하는 것인가.
『사는 것이 아니다.북조선에는 꽃이 지천으로 널려있어 모두 그걸 꺾어 弔花로 만든다.』 -북한에는 언제 무슨일로 들어갔는가. 『나는 이곳에서 흔히 말하는 보따리 장수다.
지난달말에 북한에 들어갔지만 내가 머무른 곳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행여 내가 말을 잘못해 그곳의 북조선친척들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서다.』 -그게 무슨 이야기인가.
『북조선에서는 한국을 다녀온 모든 중국내 조선족들의 명단을 파악해 놓고 있다.그 정도로 신경이 날카로운 분위기인점만 알아달라.』 -북한에는 무엇을 가져다 파는가.
『첫째가 사탕.과자.빵및 중국의 명절음식인 월병등 먹거리고 둘째는 옷가지,셋째는 기타 잡다한 일용품등이다.북조선에서 나올때는 소금에 절인 송어와 임연수어만 반출이 허용되지만 이것들은큰 돈이 안된다.그래서 마른 해삼.명태등을 몰래 갖고 온다.』-북한의 경제가 어려운데 장사는 잘되는가.
『우리가 몇배 장사를 하는지 맞혀보라.적게는 10배에서 많게는 30배로 보통 20배 장사라고 생각하면 옳다.중국에서 2元30전하는 고량주가 북한에 가면 70元을 받는다.또 10元짜리싸구려 옷이 북한에선 2백元,5元짜리 화장품이 1 백元을 호가한다.』 -북한주민들이 그렇게 비싼 값을 치르고도 물건을 사는가. 『북조선 주민들의 한달 工資(월급)는 70~1백원이지만 쓸 곳이 없기 때문에 고스란히 현금으로 보관해 구매력이 의외로높다. 중국에서도 일부 북조선사람들은 한국사람들보다 달러를 더잘쓴다. ***구매력은 꽤있어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북조선에서는 보따리 장수 대부분이 친척방문을 가장해 물건을 갖고 들어간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북조선에서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중국에 사는 친지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한 이후 오히려 장사가 더 잘된다.
왜냐면 당시 많은 사람들이 혹시 중국에 있는 친지들에게 해가미칠까봐 신고를 하지 않은 탓에 그만큼 보따리 장수가 줄었고 반대로 물건이 더욱 귀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모른채 물건을 싣고 북조선으로 향했다가 海關(세관)에서 퇴짜를 맞는 중국 조선족이 한 둘이 아니다.과거 북조선으로 향하는 다리마다 40명씩 보따리 장수들이 넘어갔는데 이젠 하루 평균 5~6명에 불과하다.』 -중국에 10원짜리 옷이있는가. 『중국인들이 입는것이 아니라 북조선 수출용으로 따로 만드는 것이다.요령성의 심양과 해청등지에 북조선으로 수출하는 물건만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공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丹東=劉尙哲.崔相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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