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 내부의 적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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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평상시에는 적의 정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위기가 닥쳤을 때나 결정적인 변화의 시점에서 드러나는 모습이 진짜일 수 있다.요즘 김일성사망과 북한체제의 변화라는 큰 사건을 앞두고 보이는 우리 사회 일각의 여러 혼란된 모습들은 어쩌면 그동안 가려지고 분식되었던 얼굴들이 가면을 벗고 제 본색을 드러낸 참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번 전남대 구내에서 발견되었다는 김일성 애도 유인물과 분향소다.운동권 대학생들 중에서도 이른바 주사파들은 상당히 좌경성향의 이론으로 무장되었을 것이라고 누구나 짐작은 했다.한때 젊은 혈기에 한번씩 빠지는 것이 좌파성향의 지식인 취향이고,나이가 들면 고쳐질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이 이번에 보인 모습은 정말 경악스럽다.대학구내에 김일성분향소까지 마련했고,그를 찬양하고 애도하며,김정일에게 충성을 약속하는 유인물까지 나타나고 있다.일시적 좌파성향의 젊은이라고 보기엔 그들의 행적이 너무나 확실하고 너 무나 노골적이다.
『민족의 태양이시며,백전백승의 전설적 영장이시며,전체 조선민중의 심장이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서거에 남한 민중은 하염없이 통곡합니다』라는 추모사가 있는가 하면,『김정일 비서의 두리로 더욱 똘똘 뭉쳐라』는 글까지 등장했다.
좌파적 성향의 지식인 글이 아니라 남조선 적화통일을 맹세하는 혁명소조같은 용어고 주장들이다.
아직까진 누가 이런 유인물을 작성했는지 확실치 않다.발견된 장소가 한때 남총련 산하의 조통위본거지였다는 점을 들어 경찰은 골수 주사파 학생들이 이북 방송을 녹취해 유인물로 제작·살포할 계획이었으리라고 추정하고 있다.이에 대해 전남 대학생회는 경찰의 조작이라고 맞서고 있지만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경찰이 진상을 왜곡하고 대학생들을 간첩처럼 몰 수 있겠는가.
유인물 작성의 배후세력이 누구인지 경찰은 이번에 진상을 확실히 밝혀내야 한다.누가 진정으로 우리 내부의 적인지,누가 우리의 심장을 겨누며 호시탐탐 가면의 얼굴을 하고 지내왔는지를 차제에 분명히 가려야 한다.만약에 그 가면의 얼굴이 추정대로 일부 골수 주사파 학생이라면 운동권 시위차원이 아니라 국가 보위의 차원에서 그들의 마각을 끝까지 추적해 발본색원해야 한다.
이들 골수 주사파들이 대학생이라는 미명으로 존속하는한 우리 사회 선의의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이 온전한 길을 걸을 수 없게 된다.김일성을 찬양하고 김정일에게 충성을 약속한 대학생이 있다는 의심이 이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는한 건전한 학생시위나 노사분규까지 모두 이들 불순세력 탓으로 돌리는 이상한 사회풍조가 만연할 것이다.때문에 누가 우리 사회를 파괴하는 내부의 적인지를 당국은 차제에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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