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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언론이 보는 남북 정상회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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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26면

김정일은 여전히이해하기 힘든 사람

2일에 노무현 대통령은 300명의 재계ㆍ정계ㆍ문화계 인사들과 함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러 평양으로 갔다. 빌 클린턴이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곳’이라고 표현했던 군사분계선을, 노 대통령은 리무진에서 내려 도보로 넘었다. 50년 이상 해결되지 않은 참혹한 내전의 두 당사자들이 평화와 화해를 이룩하기를 희망하는 상징적인 한 걸음이었다.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은 것은 후세의 역사가들을 의식한 행동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곧 끝나는 그의 대통령직에 마지막 힘을 불어넣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 방법은 북한 경제를 변화시킬 원조와 투자를 제공하는 대신에 한반도 긴장상태를 완화시키도록 김정일 위원장에게 요청하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의 접근법은 그의 측근들까지도 분열시켰다. 서양 외교관이 ‘예측불허 미사일(Unguided Missile)’이라고 부르는 이재정 통일부 장관 등 일부 측근들은 남북화해를 열광적으로 추구한다. 그들은 김 위원장이 야기하는 수많은 불쾌감도 참을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다. 다른 이들은 억압적인 김정일 정권을 멸시하며 김정일이 수많은 약속을 깨뜨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번 회담으로 김 위원장이 세상으로 살짝 나오기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다. 2000년 첫 번째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만난 김 위원장은 친근감 있었고 웃기도 잘했다. 그때 남과 북은 집단적인 행복감에 도취했다. 그러나 합의한 김 위원장의 답방은 불발했고 실질적인 성과는 적었다. 김 위원장과 만나기 위해 뒷돈 5억 달러가 지불됐다는 게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3일 정상회담은 남북 간의 거리를 확인해줄 뿐이었다. 김 위원장은 외부의 지원을 강요하지만 그 조건은 자신이 정하길 바란다. 북한 경제를 일종의 마셜플랜으로 변모시켜 중국식 자유화를 추구하자는 노 대통령의 제안은 차가운 반응을 얻었을 뿐이었다. 김 위원장은 남한의 제조업자들이 값싼 북한 노동력을 고용하고 있는 개성공단을 성공적인 ‘개혁’ 모델이라고 부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김 위원장은 자신이 폭정으로 다스리고 있는 북한사람들보다 자기 자신의 생존을 우선시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4일 서명된 공동선언은 많은 것을 약속하지만 이전에 한 약속의 반복이기도 하다. 북한의 변화에 남한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길도 열리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보면 김 위원장은 남한과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는 게 자신의 이익에 최선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렇게 하면 궁극적으로 통일이 되며 자신의 왕조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6자회담 당사국들인 중국ㆍ일본ㆍ러시아ㆍ미국은 김정일 정권을 지겨워한다. 그러나 그들은 김정일 정권이 지탱하는 데 사실상 도움을 주고 있다.

(2007년 10월 4일자)

남북 합의는 北상황 악화 증명

남북 정상 간의 획기적인 합의에 따라 거액의 자금이 피폐한 북한 경제에 투입된다.

합동 공단이 추진되고 인프라가 건설된다.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도 유입될 것이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확고부동한 공산국가다. 그런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일 위원장이 이런 합의에 동의했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의 상황이 악화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핵무기와 외부의 경제·에너지 지원을 맞바꾸는 중이다. 경제협력은 남한 대북 포용정책의 핵심이다. 남한 정책의 목표는 북한이 경제 원리에 눈뜨게 하고 북한을 경제적으로 부흥시켜 궁극적으로 통일이 이뤄질 때 그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남한의 대표적인 남북협력 사업이다. 수천명의 북한인들이 남한 소유의 공
장에서 일한다. 그러나 개성공단 사업은 극도의 통제 속에 추진돼 자본주의 사상을 북한으로 전파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번 합의로 남한 자본주의에 북한을 노출시킬 다른 공단 계획이 추진된다.

특히, 남한과 북한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해주 지역에 설치한다. 이에 따라 해주와 한강 사이에 직항로가 개설된다. 이 지역에서는 남북 간에 종종 유혈 충돌이 발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합의사항 이행에 들어갈 남한 자금은 110억 달러다. 이는 북한의 연간 국내총생산의 절반에 가깝다. 해주 개발에는 46억 달러가 든다.

동 연구원의 추산에 따르면 합의상의 경제 프로젝트 추진으로 남한과 북한이 얻게 될 경제적 이득은 각각 48억, 1380억 달러에 달한다.

평양이 경제협력에 합의한 이면에는 북한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지배적 비중에 대한 불만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중국에 광산물을 헐값에 넘기고 있다. 아마 이런 배경에서 공동선언문의 자원 개발 관련 조항이 “각종 우대조건과 특혜를 우선적으로 부여하기로 하였다”고 명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북한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까. 그렇지 않다는 게 거의 확실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자본주의 방식 채택을 납득시키는 일이 무척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북한은 ‘개혁’과 ‘개방’이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며 남한에 대한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개혁’이라는 말은 북한에서 금지된 단어다.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곧, 현 체제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 정권은 경제적 ‘개선’이라는 말을 선호한다. 이는 ‘경애하는 지도자’가 살아있는 한 공산주의에 대한 북한의 독특한 해석이 북한을 지배할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 (2007년 10월 6일자)

10·4선언 실행되면 동북아 평화 증진

남북 정상이 합의한 공동선언엔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이라는 제목처럼 여러 아이디어와 희망 사항이 포함됐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번 선언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증진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전의 많은 남북 간 합의들은 실천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선언의 실행 여부를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심적인 관심 사항은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 문제였다. 선언문에는 남과 북이 6자회담의 공동성명과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문제에 대한 추가 언급이 없어서 실망스럽다.

반세기 전 발발한 한국전쟁은 아직 공식적으로는 종결되지 않았다. 이번에 노 대통령은 휴전을 항구적 평화로 전환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공동선언은 그래서 참전국인 남북한, 미국, 그리고 중국이 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열의는 이해하지만 4개국이 모두 참석하는 정상회담을 급작스럽게 마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990년대에도 4개국 간에 실무급 회담이 진행됐지만 아무 성과가 없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인접국 간의 이해와 협력이 핵심이다.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남북한은 핵문제 해결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경제 협력을 위한 노 대통령의 노력에 만족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경제 협력이 중소기업의 제한적 투자에 국한됐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래서 공동선언에는 광범위한 경제 협력이 포함됐을 것이다. 그러나 남한의 주요 기업들은 광범위한 투자를 하는 데 아직 신중하다. 리스크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노 대통령은 북측으로부터 불신과 개혁·개방에 대한 거부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목표는 정권을 보호하는 한편 남쪽으로부터 자금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회담은 자금을 요구하는 김 위원장과 개혁의 선행을 요구하는 노 대통령 간의 의견 불일치로 끝났는지도 모른다.

김 위원장이 노 대통령에게 체류 연장을 돌발 제안하고, 노 대통령이 거절하자 곧바로 제안을 철회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밖에도 노 대통령을 당혹스럽게 한 여러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짧고 추상적이었던 지난번 공동선언에 비하면 이번 선언은 보다 구체적이다. 이는 성과로 간주될 수 있다. 두 지도자는 또한 군사 문제에 있어 신뢰 구축이 중요하다는 점을 최초로 언급했다. 첫 번째 정상회담의 흥분을 극복하고 두 번째 회담은 보다 실용적이기도 했다.

두 지도자들은 총리 및 국방장관 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남북한은 이러한 기회를 최대한 살려 공동선언에 포함된 내용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체제를 수립해야 할 것이다.
(2006년 10월 6일자)

북한의 핵 협박 서서히 성과 거둬

남북한 지도자들이 목요일에 서명한 공동선언에는 평양의 의도가 나타난다. 평양의 목표는 6자회담과 남북한 관계를 연계시켜 김정일 정권의 생존을 보장받는 것이다.

북한은 핵개발 프로그램으로 국제사회를 위협해 김정일 정권을 인정하게 하고 그 생존을 보장받으려 해왔다. 생존을 위한 김정일의 전략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지난 10월 북한은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런 다음 핵무기 포기를 대가로 미국 등 국제사회에 관계 개선을 요구했다. 관계가 개선되면 북한은 여러 나라로부터 투자와 경제원조를 이끌어내 경제 재건을 시도할 것이다.

한편 제2차 남북 정상회담 합의의 핵심은 한국전쟁의 공식 종결을 위한 남북협력과 남북 경제협력 증진이다. 남북 간 긴장완화는 북한과 미국 간의 관계 개선과 연결돼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미국의 ‘적성국 교역법’이다. 이 법이 생긴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17년이다. 이 법은 적성국과 미국 간의 외환거래, 무역, 자산 이동에 대한 단계별 제약과 금지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남북이 평화협정에 서명하기 전까지 미국은 북한을 적성국으로 취급할 것이다. 워싱턴의 적으로 간주되는 한 북한은 세계 시장의 온전한 일원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평양은 이 법의 적용을 중단하고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해 달라고 미국에 요구해왔다. 북한은 또한 적성국으로 분류되는 원인이 되고 있는 한국전쟁의 공식 종전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남북 공동선언은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의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 보자면 이 조항은 ‘평양에 대한 미국의 보상 약속’을 의미할 뿐 자신의 핵포기와 관련된 것은 아니다.

6자회담에서 미국은 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에 요구해온 조건을 완화시켰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양은 서울로부터 남북 공동 경제협력을 위한 약속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핵위협을 구사해 정권의 생존을 보장받으려는 김정일의 전략은 서서히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권위주의 체제를 변화시키지 않고 경제를 재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북한체제는 군사문제를 우선시하는 선군정치(先軍政治)로 운영되고 있다.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쪽으로부터 보다 많은 경제지원을 얻어내려고 하면서도 공동 프로젝트는 북한식 사회주의로 추진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북한이 바라는 경제지원과 투자는 자본주의적 사고의 유입을 가져와 김정일 정권을 뒤흔들 수 있다. 북한의 지도자들은 ‘트로이의 목마’라는 우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과의 경제전에서 생존하려면 정치개혁을 피할 수 없으며 국제사회는 김정일을 주시하고 있다. 핵 포기는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데 기본 요건이다.

(2007년 10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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