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카페] 정보 침해 범죄는 ‘공공의 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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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13면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합니다”.

판사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면 되돌아오곤 하는 답변이다. 하지만 실제 판사가 쓴 판결문은 대부분 법조문과 무미건조한 법적 논리로만 짜여 있다. 판사가 어떤 세계관과 가치관을 갖고 판결을 내렸는지 알 수 없다. 헌법은 법관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있지만, 판결문에서 개개인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다. 법조 경력 30년이 넘는 대법관들이 작성한 대법원 판결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점에서 대구지법 형사3단독 한재봉 판사의 판결문 구성은 독특하다. 뚜렷한 주관
을 담은 데다 기존의 판결 경향까지 과감하게 비판하고 있다. 심부름센터에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제공한 개인정보 판매상 두 명에게 지난달 19일 내린 판결문을 보자.

“개인정보 침해 범죄는 비폭력성·비노출성·비신고성의 특징으로 인해 다른 재산 침해와 달리 일반인의 피해 인식 정도가 낮은 편이고, 관대하게 처벌되는 경향마저 없지 않다. 그러나 오늘의 신용정보화 사회에서 올바른 정보윤리와 정보문화를 확립하고 정보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적’인 정보 침해 범죄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결론에 따라 정보 판매상들에게 각각 징역 3년, 징역 2년6월의 중형을 선고했다. 최근 건강보험공단과 국민연금관리공단 등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면서 쟁점화하고 있지만, 그간 징계나 처벌 수위는 크게 낮았던 게 사실이다.

그는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관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경찰지구대 연행 후 행패를 부린 혐의로 기소된 K씨 등 두 명에게는 이례적으로 징역 1년,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종래 법원과 검찰이 성실히 직무에 전념하고 있는 경찰관들의 인권 보호와 사기 진작, 준법의식 고취 등을 고려해 공무집행방해 사범을 엄히 처벌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온정주의적·관용적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공권력의 권위가 하룻강아지조차도 무서워하지 않는 범(호랑이)의 신세와 같은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법조계 내부에서는 그의 판결문에 대해 “법 논리보다 사회적 문제의식이 앞선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판사 자신의 문제의식을 법 논리 뒤에 숨기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법원 내에 건전한 토론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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