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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정책분석/기본노선 바탕 「적극외교」 펼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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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남/일찍부터 수립·지휘에 실질 역할/「전범」 부담없어 “보다 신축적” 예상
김정일의 대남정책은 기존정책을 유지하면서 정통성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것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부분의 북한전문가들은 기본 노선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그 근거는 김이 일찍부터 대남사업에 깊이 개입해 왔다는 점이다.
○정통성 확보 노력
북한은 지난해부터 대남사업분야도 김정일이 상당한 역할을 해 왔다고 선전해 왔다.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비롯,판문점 도끼만행사건·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남북정상회담등을 모두 그가 지도했다는 것이다.이런 선전은 김정일의 우상화와 후계체제 공고화를 위해 필요하다.
김정일의 대남정책 역할론은 실제로 관련자들의 증언에서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북한 내부적으로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지목된 74년 이후 『미국이 도발하면 본때를 보여라』는 김정일의 말이 유행했으며,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은 이런 기조위에서 저질러졌다는 것이다.
80년대에는 이미 서열 2위에 올라 김일성과 꼭같은 보고를 받고 지시를 하던 때여서 아웅산 테러나 KAL기 폭파사건등은 그의 지시 아래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김정일이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우리식 사회주의」를 가장 잘 이해하고,김일성의 혁명을 완성할 인물이라는데서 후계체제의 명분을 얻고 있다.
남북고위급회담 대표였던 이동복씨는 만약 세습의 명분으로 삼고있는 김일성의 기본노선을 바꾸게 되면 후계체제의 정통성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일의 대남정책이 바뀔 수 있는 요인은 주변환경의 변화에 있다. 사회주의권의 몰락,남북간 국력의 엄청난 격차,북한 내부의 심각하고 만성적인 경제난등이 이에 해당한다.
김일성이 죽은 뒤 북한방송은 주체사상·우리식 사회주의·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어 기본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동구변화에 영향
그러나 김일성의 항일경력을 내세운 「자주성」의 약화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으며 남쪽의「자주화세력」을 겨냥한 통일전선전략에 일정수준 차질이 불가피하다.
또 김정일은 항일투쟁 경력이 없는 대신 한국전쟁의 전범이라는 짐을 지지 않는 점에서도 김일성과 다르다.
이것은 대남정책은 물론 대미정책에서도 큰 부담을 덜고 자유로울 수 있는 조건이다.
남한이나 미국정부와 대화할 때 김일성보다는 여론의 부담을 덜수 있다.
따라서 대남정책도 대외정책의 한 변수로 생각하고 그림을 그릴 가능성이 크다.
김정일이 지난해 3월 NPT를 탈퇴하면서 핵문제를 대미정치협상을 통해 일괄 타결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은 그러한 경향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92년말 대남담당비서를 강경파인 윤기복에서 김정일의 측근으로 국제통,특히 대서방외교 전문가인 김용순으로 교체한 것도 이러한 배려로 해석된다.
김정일은 남북정상회담에도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정상회담이 정통성을 제공해줌은 물론 미국과 일괄타결을 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이 재론돼 상호주의가 다시 거론되면 전쟁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김정일이 쉽게 서울 방문을 받아들이는등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있다.
따라서 양측 모두 고위급회담에서 합의된 화해,군사,경제교류협력,사회·문화공동위등 4개 공동위원회를 가동하는데 노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이며,이산가족문제가 가시적 성과로 제시될 수 있다.
○대미협상과 연계
장기적으로는 화해협력단계를 발전시키는 방안으로 연방제안에서 지방정부의 외교·국방권을 강화해 남쪽이 주장하는 국가연합에 좀더 접근해올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북한―미국 협상의 진행속도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김진국기자>
◎대외/경제난 타개·고립 탈피에 비중/미·일과 수교추진·개방선택 확실
장차 북한 김정일 체제의 구축은 그의 대외정책과 깊은 관계가 있다. 중국이 김정일 승계를 사실상 인정하고 북한의 대서방관계를 읽게하는 북―미3단계회담의 17일이후 재개가 합의되는등 외교현안이 하나씩 가닥을 잡아가는 것으로 김정일의 외교정책을 가늠해 볼수 있다.
○중과 혈맹 다지기
현재 1백29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북한의 대외정책은 김일성사망 직후 혼돈상태에 휩싸인 점을 감안,당분간 외형상 조용하게 전개될 것으로 관측된다.
절대권력자의 공백에 따른 혼란을 막기위해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기보다는 안정기조를 유지,내부 동요를 억제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우리 정부와 전문가들은『북한은 지금 체제안정에 힘쓰는 단계일것』이라며 『대외문제는 일정기간 적극성을 보이기 어려우며 현상을 유지하는데 급급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은 유일한 후견인 중국을 방문하는등 중국과의 혈맹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가능성은 있다.집안단속과 내부안정을 위해서도 중국과의 결속은 절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이 김주석 사망 직후 그 사실을 중국에 통보해준 점,독일을 방문중이던 리펑(이붕)중국총리가 일정을 급히 취소한점,그리고 차오쭝화이(교종회)평양주재 중국대사가 『조선과 양국의 우호관계가 대를 이어 지속되기를 원한다』고 천명한 점등은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앞으로도 「혈맹」관계로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읽게 해준다.
결국 북한은 절대권력의 장래와 직결되는 대중협력강화의 외교를 펼치고,중국 역시 암투없는 김정일체제를 인정,주변국이 안정돼야만 경제개혁과 개방정책을 성공리에 끝낼 수 있다고 계산하는듯 하다.
연하청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중국은 북한의 체제안정을 지원하면서도 종전보다 강한 개방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와 우호 재추진
한편 김정일은 다소 불편해진 러시아와도 관계개선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러시아 외무부가 지난 10일 『북한지도부의 교체가 러―북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선린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중국·러시아와의 관계정립이 끝나면 김정일은 본격적인 대서방 관계개선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고 엄청난 경제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이 없는 것이다.
특히 북핵문제와 관련,미국을 가장 핵심적인 파트너로 인식,17일 이후로 예정된 북―미3단계회담을 카드로 활용해 미국과의 수교등 관계개선을 꾀할 것이다.
이는 김정일이 그동안 김주석과 함께 북―미회담 진행상황을 계속 지켜봤으며 정책결정에 직접 관여했다는 북측 보도에서 보듯 김정일도 김일성의 대미정책을 계승할 것이라는 분석에서 나온다.
북한은 또 지난90년 김주석이 방북중인 가네마루 신(김환신)전일본자민당총재에게 기습적으로 제안한 일본과의 수교문제도 적극모색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일본과의 관계는 북미관계진전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이다.
통일원의 관계자들은 『김정일의 근본적인 대외정책 기반은 중국과의 관계증진과 함께 대미·일관계에도 비중을 두는 김일성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문제가 해결될 경우 북한의 대미·일관계는 머잖아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
○강경군부 걸림돌
북한은 이와함께 제3국중심의 비동맹국들과의 관계강화에도 나설 태세지만 비동맹회의 자체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고 김일성이 이들과 개인적으로 친분관계를 유지해온 데 비해 김정일은 친분기반이 미약,관계강화는 불투명하다.
북한식 사회주의를 고수,개방을 꺼리는 혁명1세대격인 강경 군부세력의 반발을 무마하는 문제등이 향후 발전적인 대외정책을 전개하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지만 김용순대남담당비서·황장엽국제담당비서·강석주외교부부부장등 김정일의 측근이자 개방파 외교관들이 중심이 돼 개방적 대외정책을 펼쳐나가리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정선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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