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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로도 정신 조절가능 이상 일으키는 신경전달물질 밝혀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과학이 최고도로 발달해 이룩한 인류최후의 문명은 어떤 모습일까. 영화『금지된 행성』에선 마음먹은대로 즉시 실현되는 마법과같은 기계의 완성을 상정한다.
그러나 배가 고프면 빵이 생기고 행복해지고 싶으면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기쁠 수 있는 이른바 꿈의 세계는 오히려 인류의 멸망으로 귀결되고만다.의식 깊숙이 숨어있는 파괴와 질투.증오등인간의 본능적인 이드(무아의식)가 통제되지않고 마구 실현돼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학이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분야로 인간의 마음을 관장하는 장기인 뇌가 꼽히는 것은 당연한 일.
이미 美의회는 1990년대를「뇌의 10년(Decade of Brain)」으로 정하는 법안을 제정하고 대통령이 이를 공식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지난달 27일부터 7월1일까지 美워싱턴에서 열린 제19차 국제신경정신약리학회에는 여느 때와는 달리 세계 55개국에서 5천여명의 뇌전문가들이 모여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열띤 토론을 벌여 가위 뇌연구의 절정에 다다른 듯한 느낌이었다.
학술논문만 2천여편이 발표된 이번 학회에서 드러난 세계정신의학의 주된 흐름은 과거 프로이트나 융의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정신분석이론이 퇴조하고 전자현미경과 첨단유전공학기법이 도입된 분자생물학적 접근방식이 뚜렷이 부각되는 것이다.
즉 모성애와 같이 고귀한 인간의 정신영역은 물론 정신분열증과같은 정신병도 뇌속에서 단지 수백만분의 1g 분비되는 것에 불과한 도파민이나 세로토닌같은 신경전달물질의 작용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천재와 광인도 결국 종이 한장 차이라는 것으로 이들 신경전달물질이 정상보다 조금 많이 반응하면 인간의 창조력과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천재의 영감을 얻을 수 있으나 지나치게 되면망상.환청등의 증세를 보이는 정신분열증을 앓게된다는 것 이다.
美케이스웨스턴리저브大 허브 멜처교수와 영동세브란스병원 李弘植교수는 정신분열증에 대한 연제발표에서『기존 치료법으로 잘 낫지않는 난치성 정신분열증의 경우 도파민과 세로토닌을 한꺼번에 차단할 수 있는 클로자핀과 같은 약물이 우수한 효과 를 나타낸다』며 이미 정신분열증의 치료가 과거 정신분석에서 약물치료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강조했다.
또 다른 정신병의 하나인 우울증은 주로 세로토닌 기능저하 때문이다.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해서 미국인들에겐 해피메이커로 널리 알려진 프로작이 세로토닌기능을 향상시켜주는 대표적인 抗우울제다.
현재까지 밝혀진 신경전달물질은 40여가지며 이들은 각종 정신질환의 발생에 관여함은 물론 인간의 기본적인 성격과 각성.수면은 물론 기억과 지능에까지 중요한 역할을 맡고있는 것으로 속속밝혀지고 있다.
조르지오 라카니 국제신경정신약리학회장은『약물이 신경전달물질을조절해서 인간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엄연한 실재』라며 미래의 정신의학을 묻는 기자의 질문엔 『신경전달물질 자체의 생산을 맡고 있는 유전자의 이상을 찾아내 원천복구함으로써 더 이상 약물이 필요없는 유전자치료가 본격화될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DC=洪慧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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