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자유치 위한 「정공법」/나진·선봉 책임자 교체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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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남과 직접 합작투자 신호탄
북한이 나진·선봉자유무역지대 개발 책임자를 권력서열 6위인 실세 김영주부주석으로 전격 교체한 것은 자유무역지대를 선포한지 2년이 다 돼가도록 개발이 지지부진하자 외자유치를 위한 「정공법」을 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김일성 주석이 직접 나서 인프라 개발을 강조한데 이어 북한 관계자들이 남한 기업인들에게 나진·선봉 지역에 투자하라고 손짓하는 것은 중국기업을 중간에 끼워 우회적으로 남한과의 합작을 추구하던 정책이 별성과를 얻지 못하자 남북한 직접 합작개발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동안 북한은 법적·제도적 정비를 매듭짓고 외국자본이 이 지역에 들어오기를 기다렸으나 핵문제로 북한이 투자위험지역으로 지목돼 있는데다 도로·항만등 인프라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실질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게다가 북한은 지난90년부터 92년까지 남북고위급회담을 개최,화해분위기를 조성해놓고 남한기업들이 이 지역에 투자해주길 은근히 바랐으나 핵문제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날로 심화되는 경제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일부 지역의 부분적인 개방을 통한 외자유치에 박차를 가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선결과제가 인프라 구축이었다.
북한이 아무리 투자유치를 원해도 도로나 항만·상하수도·전기시설등을 갖추지 못한 황무지에 외국기업이 눈독들일 턱이 없다.
물론 이같은 조치만을 놓고 북한이 당장 핵개발을 포기하고 대외개방쪽으로 가닥을 잡아간다고 섣불리 해석할 순 없다.
다만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북―미 3단계고위급회담이 개최돼 관계개선이 논의되는 미묘한 시점에 나온 조치여서 북한의 정책변화를 어느 정도 읽게 해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우선 미국은 핵문제가 해결될 경우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등 북한과의 관계개선 용의를 거듭 천명하고 있고,일본도 대북수교 시기를 조심스럽게 넘보고 있다.
게다가 남한도 북한이 미·일등 서방국가들과 관계개선을 하는데 반대하지않는다는 입장이며,특히 핵문제가 해결될 경우 오히려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요컨대 북한의 주력사업인 나진·선봉자유무역지대 개발의 성공여부는 핵문제와 깊이 연계돼 있고 이 점에서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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