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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모호성은 김정일의 기선제압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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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고 김정일 전문가
김달술의 관전평

"김정일 위원장이 펼치는 '깜짝쇼'는 '깜짝쇼'가 아닙니다. 회담 전략 차원에서 계획된 것이라고 봐야지요."

30년간 정보기관에 있으며 북한을 연구해온 김달술씨의 분석이다. 김씨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대중 당시 대통령 앞에서 김 위원장의 대역(가게무샤.影武者)을 맡아 모의회담을 했던 '김정일 연구 전문가'다.

2일부터 이틀 동안 2007년 정상회담을 지켜본 그는 "2000년에는 김 위원장의 순안공항 등장 여부가 관심이었지만 이번에는 언제 어디에서 등장할지 궁금증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며 "모호성을 통해 회담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그의 모습은 변치 않았다"고 말했다.

-3일 김 위원장의 일정 연장 제안을 어떻게 봐야 하나.

"정상회담 현장에서 협의할 내용에 따라 일정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상황을 만들어 가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본격적인 의제 논의를 하는 오후 회담 초반에 그런 이야기를 꺼내 상대를 위축시킨 것이다. 2000년에도 인공기 게양 사건을 문제 삼아 김대중 대통령에게 (회담할 생각이 없으니) '편히 쉬다 가시라'고 말해 김 대통령이 깜짝 놀라지 않았나."(※2000년 정상회담 당시 검찰이 국내 대학에 인공기를 게양한 관계자들을 법적 처리 하겠다고 밝혔다.)

-환영식장에서 김 위원장이 말을 아끼는 등 2000년에 활기찼던 모습과는 다르다.

"김 위원장은 회담 전에 상대에 대한 연구를 철저히 한다. 그럼에도 직접 만나면 상대방의 성향 파악에 집중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일종의 탐색전이다. 자신이 냉정하게 대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는지, 또 친절히 대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타진해 보는 것이다. 그의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환영식장이 바뀐 것도 그 연장인가.

"원래 환영식은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에서 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1시간 전에야 바뀌었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 노 대통령은 미리 알고 있었을지 모르나 의전상 결례다. 환영식을 위해 3대헌장기념탑에 있던 사람들을 변경된 장소로 데려갈 수는 없지 않으냐. 결국 북한 내부에서는 미리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3일) 정상회담 시간도 10시에서 30분 당기지 않았나. 그의 스케줄에 대해서는 일절 알려주지 않는다. 홈그라운드의 프리미엄과 모호성을 통한 기선제압이다."

-김 위원장의 신변안전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김 위원장을 테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자기 나라에서 회담을 하는데 신변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주민들이 '위대한 지도자'라고 칭송할 수 있겠나."

-환영 행사에 나온 북한 고위인사들이 13명에서 22명(의전장 제외)으로 늘어난 부분은 어떻게 해석하나.

"남쪽에서 정당, 재벌, 학계 등 다양한 분야를 대표할 사람들을 접대할 상대로 나온 것이다. 특히 참여정부 말기에 치러지는 회담이다 보니 경제협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내각 총리를 비롯해 실무책임자들이 나온 것 아니겠나. 우리도 실무적으로 임한다고 했으니 그쪽에서도 그런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7년 만에 본 김 위원장에 대해 평가한다면.

"왼쪽 눈과 귀 사이에 기미(검버섯)가 많이 늘어나고 조금 피곤해 보였지만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북한이 지난해 핵실험을 했으니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맞먹는 힘을 갖췄다고 생각할 것이다. 핵 개발을 통해 자신이 강국의 지도자라고 자고자대(自高自大.자기 스스로 자신을 높이고 크게 평가)하는 측면도 있으나 이번 회담을 통해 남쪽의 대규모 경제 지원을 끌어내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정상회담과 비교해 본다면.

"2일 환영식장 분위기가 2000년에 비해 활기차지 못했다. 김 위원장 안색도 좋지 않았다. 2000년 정상회담은 북한이 '선군정치'를 하며 '고난의 행군'을 막 끝낸 시점이다. 김일성 주석 사망 후 은둔 속에 있던 김 위원장이 DJ와 만난 것이다. 환영식도 크게 하고 공항 이벤트를 통해 전 세계에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말대로 은둔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번에는 회담 성격이 실무적이라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실무적 회담을 바탕으로 선군정치 중심에서 인민생활 중심으로 정책 방향을 바꾸길 바란다."

정용수 기자

국정원 출신'김정일 대역'
2000년 DJ와 모의 회담

◆김달술씨=1961년 중앙정보부(국가정보부 전신)에 들어가 30여 년간 남북 문제를 다룬 북한 전문가다. 근무 기간 중 상당부분을 김일성.김정일의 성격과 북한 체제 연구에 집중했다. 71년 남북 적십자 예비회담 때부터 남북 회담 테이블에 나갔다. 97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2000년 정상회담을 앞두고선 김정일 위원장의 대역을 맡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모의 정상회담을 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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