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보는 남북정상회담/테오 좀머 독 디차이트지 발행인(긴급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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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통독과정 타산지석으로 삼자/현실인식·우호적 접근통한 변화 바람직/전쟁안한 동서독도 통일까지 20년 걸려
철의 장막은 반세기에 걸쳐 한반도를 철저히 남북으로 차단시켜 왔다.『북은 북,남은 남,둘은 결코 만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이따금씩 긴밀한 접촉을 위한 시도는 그때마다 상호 불신과 적대행위라는 구렁텅이에 빠져 실패로 돌아갔다.한 반도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이 계속되고 있는 지역이다.그러나 지금 서울과 평양의 두 지도자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 70년3월로 가보자.당시 빌리 브란트 서독총리와 빌리 슈토프 동독총리는 남북정상회담 만큼이나 역사적인 첫 동서독간의 만남을 가졌다.
두 정상은 동독의 에르푸르트에서 만났다.흥분한 군중들이 브란트 총리가 묵던 호텔앞에서 『브란트』를 외치던 장면이 생생하다.그는 당시의 격앙된 순간을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나는 내일이면 본으로 돌아간다.그러나 그들은 아니다.그래서 나는 손을 흔들어 그들을 진정시키고 타일러야 한다.나는 이루어지지 못할 희망이 자라는 것같아 두려웠다.』
협상테이블에서 브란트는 슈토프에게 말했다.『현재의 상황에서 독일의 평화와 독일국민을 위한 발전방안을 찾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그는 양독관계정상화와 데탕트(긴장완화)를 제의했다.
슈토프가 61년의 베를린 장벽 건설이 인도주의적인 것이었다는 주장을 하려할 때 브란트는 진정한 데탕트와 정상화는 장벽과 견고한 국경을 허물도록 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양독간에는 잔혹한 전쟁이 없었다.동서독의 분단은 한반도의 분단과 같은 처절한 아픔이 없었다.동서독간에는 서로 편지나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고 상호 방문하는 일도 가능했다.국경을 넘어 상대방 TV를 자유로이 수신할 수도 있었다.또 호혜적인 경제교류도 있었다.그런데도 에르푸르트에서의 첫 만남 이후 동서독이 통일하기 까지는 2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지금 한반도의 두 김씨가 그들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독일통일의 교훈을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우선 만남을 피하거나 금지하지 말아야 한다.국방은 튼튼히 하되 자유사상의 강한 전파력을 확신해야 한다.장기적으로는 적극적이고 침투력있는 데탕트가 민주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서독이 내세운「우호적인 접근을 통한 변화」라는 슬로건이 효과적일 것이다.
다음으로는 출발점을 실제현실에 맞추어야 한다.이것은 70년 독―소조약의 가장 중요한 조항이기도 했다.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정책상의 필요로 군사력 동원을 들먹이지 말아야 한다.더 이상의 전쟁은 안된다.더 이상의 피와 눈물은 피해야 한다.이러한 상호간의 약속이 데탕트 초기에 확립되어야 한다.그리고 나서 국경을 비무장화해야 한다.그 다음 상호간 균형적인 군축을 해야한다. 데탕트가 국가간의 관계에 국한되어서는 안된다.관계정상화는남북 양쪽의 국민들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그들이 서로 통신하고 여행할 수 있게 해야 하며,제한적이나마 이민도 이루어져야 한다.접촉과 방문,상품·서비스와 사람의 왕래가 이뤄져야 한다.비록 부분적이라 하더라도 상호간의 협력은 통일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한 민족간의 친선관계수립,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민족의 통일은 주변국가들의 이익을 만족시켜 주는 적합한 국제환경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독일의 경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바르샤바조약기구와 그 뒤를 이은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그리고 동서독과 미국·소련·프랑스·영국이 체결한 「2+4」협정등 방위조약체제에 부합하면서 통일이 이루어졌다.한반도에서는 아시아안보회의와같은 것이 필요할 수도 있으며,남북한과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이 참가하는 「2+4」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통일의 과정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인내력을 가져야 한다.통일은 단일사건의 결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잘 되는 경우에도 지루한 과정을 거쳐 달성될 전망이다.
비약적인 진전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는 것을 성에 차지 않는다고 피해서는 안된다.그러면서 예상밖의 사건에 대해서도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독일국민은 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라는 의외의 사건에 대해 준비하지 못한 결과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인류 역사+상 2개의 개별적인 사건들이 동일하게 전개되는 법은 없다. 헨리 키신저의 말대로 역사는 비유를 통해 교훈을 주지,동일성으로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동방정책의 원칙과 과정은 동북아시아의 미래에 대해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에르푸르트 1970년3월19일과 평양 1994년7월25일.이두가지 사건이 서로 같은 비중으로 평가받게 되는 날이 올 것인가.역사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우리는 상상력의 부족으로 인해 역사를 모독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약력〉 ▲현 독일『디차이트』지 발행인 ▲튀빙겐·하버드대졸업 ▲『디차이트』지 정치부장·편집국장 ▲국방부 수석기획참모 ▲국제전략연구소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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