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침선언」에 절충 여지/평화협정 잘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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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도 군비통제 겨냥 동의 가능성
우리 정부는 일관되게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해왔고,북한은 평화협정은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북―미간에 체결해야 하고 남북간에는 불가침선언을 채택하면 된다고 주장해왔다.
그 결과 91년12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채택된 기본합의서에는 양자를 절충해 쌍방이 각각 해석할 여지가 있는 상호불가침 내용에 포함됐다.
정부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다시 북측에 제안하는 것은 과거와는 다른 조건을 고려한 것으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미국이 북한의 핵투명성만 보장되면 1단계로 북한과 상주연락대표부를 설치하고 다음단계에선 수교도 고려할수 있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 정부도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선 이를 지원하고 남북관계도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 때문이다.
즉 북―미관계가 수교로 향할 경우 필연적으로 북―미간의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고,정부는 이에 따라 남북간 평화협정을 추진해 나간다는 방침인 것이다.
남북간 평화협정 체결이 갖는 의미는 몇가지로 간추려볼 수 있다. 현재 한반도에는 1953년 7월17일의 휴전과 함께 체결된 정전협정 체제가 그나마 평화를 유지하는 틀이었다.
정전협정 체결 당시 한국의 이승만대통령이 휴전에 반대해 정전협정에 참가하지 않음으로써 정전협정의 당사자는 유엔군측의 미국과 공산군측의 북한·중국이었다.
이에 따라 전쟁의 한쪽 당사자인 한국이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본회담의 남측 수석대표를 맡지 못하고 유엔군측의 대표들 속에 끼여 참가했다.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92년 3월에 한국군의 황원탁소장을 유엔군측 수석대표로 임명하자 북한은 정전위 본회담에 참가하지 않고 비서장회의나 일직장교회의만 유지해왔다.
북측은 핵문제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4월 정전위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하고「판문점 북조선대표부」를 설치한다고 통보해왔다. 그 뒤에도 물론 일직장교회의는 열렸으나 정전체제는 현재 불안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이 판문점대표부를 기습적으로 들고 나온 것은 미국과의 판문점 군사문제 접촉창구를 정치군사회담 성격의 창구로 바꾸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처럼 줄기차게 미국과의 정치군사회담을 요구하며 한편에선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의 철수를 의도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한국은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북한―미국이 아니라 남한―북한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될 때도 평화문제의 언급에서 북한은 「불가침선언」을,한국은「평화협정」을 의도한게 절충됐다고 할수 있다.
정부는 이같은 어정쩡한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선 남북간의 평화협정 체결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다만 어차피 미국이 정전협정에 참가한만큼 북한―미국간 정전협정 상태로의 마무리도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마련하기 위해선 남북·북미간협정이 동시에 진행될 수도 있다.
북한도 남북정상회담에 적극적인 만큼 과거처럼 미국과의 평화협정에만 매달리지 않고 이것과는 별도로 남북간의 평화체제를 위한 합의서에도 동의하고 나올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남북간의 평화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은 북한이 그토록 원하는 군비통제의 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유영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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