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조7000억원 손배소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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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계의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화이자가 뇌막염 치료 신약을 나이지리아에 공급해 어린이 11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85억 달러(약 7조700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렸다.

1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화이자는 1996년 나이지리아 북부 카노 지역에서 뇌막염이 발생하자 당시 갓 개발했던 트로반(Trovan)이라는 치료제를 어린이들에게 복용케 했다. 이 회사는 200명의 뇌막염 환자 중 절반에겐 트로반을, 나머지에겐 안전성이 입증된 다른 치료제를 먹였다. 그 결과 트로반을 복용했던 환자 중 11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불치의 후유증을 앓게 됐다. 그러자 나이지리아 정부는 "트로반의 부작용 때문에 여러 명이 목숨을 잃거나 후유증에 시달리게 됐다"며 화이자 측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화이자 측은 "치명적인 전염병으로부터 어린이들을 구하라는 국제사회의 요청에 따라 나이지리아에 약을 공급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트로반을 닷새 정도 복용할 경우 효과가 나타나 뇌막염 전염 차단에 큰 효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는 것이다.

화이자 측은 "트로반은 나이지리아에 공급하기 전에 이미 5000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마쳤던 약"이라며 "환자들이 숨진 것은 약의 부작용이 아닌 뇌막염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트로반은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지만 승인 3년 뒤 간에 치명적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엄격한 사용제한 조치를 당했다. 이번 재판은 나이지리아에서 열린다. 애초 이 소송은 2005년 미국 내에서 제기됐으나 해당 법원이 나이지리아에 관할권이 있다고 결정했다.

이번 사건으로 나이지리아 곳곳에서 화이자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화이자=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로 유명한 제약회사로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다. 1942년 페니실린 양산에 성공한 데 이어 스트렙토마이신.테라마이신 등 항생제를 잇따라 개발하면서 세계적인 제약회사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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