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현실적」 해법 선택/한미,「과거」규명 뒤로 미룬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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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투명성확보 강행땐 득보다 실” 판단/남­북·북­미 대화진전 일단관망전략
한미 양국은 북한의 과거 핵투명성을 확보하는 데서 현재와 미래의 핵개발을 저지하는 쪽으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핵관리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같은 전환의 일차적 이유는 협상을 통한 과거 핵문제 해결이 벽에 부닥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유엔 안보리 제재등 압력을 통해 북한을 굴복시키는 문제도 여러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음이 명백해져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 추구해 나갈 때 있을 수 있는 부정적 파급효과가 북한의 핵활동을 동결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 문이다.
한미 양국은 북한핵문제가 이슈로 등장한 이래 최근까지 북한이 핵무기를 단 한개도 보유해선 안된다는 정책목표를 세워두고 이를「당근과 채찍」이라는 이름의 협상위주 전략으로 달성하려 노력해왔다. 그러나 협상위주로 과거핵목표를 달성하려는 정책은 지난달 북한이 영변 5㎿원자로 연료봉 교체를 강행함으로써 더이상 효과적인 것이 되지 못하고 있다.
협상 위주 전략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과거 핵개발여부 공개를 원치 않는 북한의 강한 의지 때문이다. 북한이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체제 유지의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는 핵불투명성을 유지하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것을 한미 양국이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한미 양국이 유엔 안보리 제재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이같은 의지를 압력을 가해 꺾어 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방법은 한반도의 긴장을 필요 이상으로 높이는 한편 제재에 있어 중국이나 러시아 등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사실상 반대 내지 유보입장을 나타내는등 현실적 한계가 있어 그 효과가 의문시됐었다.
압력을 가하는 방법중 가장 극단적인 수단인 군사적 공격은 그명분이 충분치 않으며 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과 함께 한반도의 방사능 오염이라는 재앙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북한이 핵개발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등 상황이 크게 악화된다면 이같은 극단적 방법의 동원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 제재를 추진하는 도중 지미 카터 전미대통령의 방북으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상황에서 당장 이같은 방법을 고려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처럼 협상을 통하거나 압력을 가하는 방법 등이 여러가지 현실적 제약을 가짐에 따라 북한에 대해 당장 완벽한 핵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은 현단계에서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북한이 연료봉 교체를 강행함으로써 연료봉을 재처리하는 문제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 점도 한미 양국이 정책을 전환하게된 큰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윌리엄 페리 미국방장관은 북한이 연료봉 교체를 강행한 직후부터 이를 재처리하면 5개 정도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여러차례 강조한 바있다.
이같은 우려가 대두하고 있는 시점에서 과거 핵투명성 확보라는 목표는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결국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개발 가속화를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하고 정책목표를 수정하게 된 셈이다.
한미 양국이 북한의 과거 핵투명성 확보라는 목표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한미는 일본이「과거」규명을 요구하는등 분위기로 보아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아무리 소량이라도 동북아시아 질서를 크게 위협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판단하며 이의 규명을 추후에라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북한은 앞으로도 핵개발의「과거」나 핵무기 보유 여부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돼 북한핵의「과거」가 장기적으로 어떻게 정리될지 전망키 어렵다.
어떻든 남북한 정상회담 개최문제가 새롭게 부상하면서 북한핵의 투명성 보장에 있어「핵활동 동결」은 북―미 고위급회담을 통해 달성하는 단기적 목표로,「과거 핵투명성 확보」는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는 시점에 맞추는 장기적 목표로 이원화 되었다.〈강영진·최원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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