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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 문 연 미술관 “100세 노모에게 바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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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조각가 이갑열 교수가 어머니 조원수씨와 함께 자신의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상진 기자]

올해 100살을 맞은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은 채 허름한 작업실에서 돌을 깎는 아들을 지켜보고 있다.

10여년동안 지리산에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작품을 만들어 온 조각가 이갑열(59·경상대 미술교육과)교수가 지리산 웅석봉(해발 1099m)자락인 경남 산청군 단성면 청계리에 ‘산청 이갑열 현대미술관’을 최근 세웠다. 그리고 어머니 백수(百壽)기념과 미술관 개막전을 겸해 어머니의 사랑을 주제로 한 ‘인간의 문’ 등 대형작품 20여점을 공개했다. 화강석에 유방과 배꼽 같은 여성의 몸을 기하학적으로 새겨 생명을 탄생시키고 기르는데 헌신하는 모성애를 묘사하는 작품들이다.

“조용히 격려해 준 어머니의 보살핌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답니다. 어머니께 바치는 마음으로 미술관을 지었습니다.”

이 교수 모자가 지리산 자락을 찾은 것은 1996년 가을. 작가의 이름을 내건 미술관과 조각공원을 세우고 싶었던 그는 산청군의 도움으로 축사가 딸린 임야 2필지 4297㎡(1300평)를 구입했다. 산청군이 조각공원 부지로 임대해 주기로 약속한 군유지 2만여평의 중심 땅이었다. 90년 안식년을 맞아 찾아갔던 노르웨이 오슬로의 ‘구스타브 비벨란조각공원’ 같은 공원을 지리산에 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아들이 사놓은 땅을 보러 왔던 어머니 조원수씨는 “고마 여기서 살란다”라며 주저 앉았다. 축사를 고친 작업실에서 라면을 먹으며 작업을 하던 아들의 밥이라도 챙겨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부산의 큰아들 집에 있던 어머니는 작은 아들의 미술관 예정터를 둘러보러 왔던 길이었다. 그 무렵 이 교수의 부인은 진주서 학교를 다니는 수험생 남매의 뒷바라지 때문에 남편의 작업실을 자주 찾을 수 없었다.

이 교수는 강의가 있는 날만 진주를 다녀온 뒤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작품에 몰입했다. 2004년 초 이렇게 만든 크고 작은 작품들이 30여점이 됐다. 그동안 모아둔 작품까지 합치면 400여점. 미술관을 짓기로 하고 진주의 아파트를 처분한 돈과 작품을 판 돈 5억여원으로 그해 말 착공을 했다. 야산을 깎아 터를 고르고 직접 설계를 했다.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분양을 끝내고 철거하는 통영의 아파트 모델하우스 4채를 뜯어와 건축자재를 재활용했다. 뜯어온 자재에 맞춰 설계를 해야 했다. 창틀 크기에 맞춰 문을 내고 싱크대 모양따라 부엌이 만들어졌다. 뜯어온 변기·욕조에 맞춰 화장실을 지었다.

건설회사서 쓰다 남은 타일을 가져와서 사용했다. 같은 무늬의 타일을 더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타일 면적을 계산해 본 뒤 작업을 하는 섬세함은 조각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부들이 짜증을 내면서 돌아가버리면 부인 안선옥(55)씨와 함께 밤을 새며 마무리하는 날이 많았다. 이렇게 해서 건축비의 절반 정도를 아낄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난달 연건평 485㎡(147평, 지상 2층)의 미술관이 완공됐다. 1층에는 전시실과 관리실, 2층은 전시실, 회의실, 도서관, 세미나실, 자료실 등을 갖췄다. 우선 1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2호 미술관과 6만㎡의 조각공원,조각체험장, 야외음악무대, 조각분수 등 2차 사업도 곧 시작할 계획이다. 그는 “어머니처럼 움직직일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며 좋은 작품을 남긴 뒤 미술관은 사회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술관 관람은 무료다.

김상진 기자

◆조각가 이갑열=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경상대 미술교육과 교수로 있다. 이탈리아 까라라 국립아카데미와 미국 피츠버그 주립대 초빙교수를 지냈다. 개인전을 12차례 가졌고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과 제6회 문신미술상을 받았다. 한가지 주제에 몰두하지 않는 다양한 작품세계를 갖고 있다. 미술관 055-972-7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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