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교보다 기술 배워라” 치밀한 ‘장인 리더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9월 18일 오후 인천 문학야구장. 경기가 없는 날이라 3만 관중석은 텅 비었고, 가을비까지 내려 서늘했다.

 훈련 중인 프로야구 SK 선수 사이에 김성근(65·사진) 감독이 함께 비를 맞고 있었다. 그는 타격훈련 중인 외야수 김강민(25)을 불렀다.

 “잘 맞은 순간을 잊어선 안 된다. 그러려면 1000번이고, 2000번이고 배트를 휘둘러야 해. 뇌와 근육에 스윙폼을 기억시켜야 진정한 네 것이 된다.”
 잠시 뒤 땀범벅이 된 김강민을 김 감독이 다시 불렀다. 불호령이 떨어지려나 긴장한 선수는 차렷 자세가 됐다.

 “샤워 꼭 하고 들어가라.”

 쌀쌀한 날씨에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김 감독의 훈련 방침은 ‘반복 훈련’과 ‘철저한 자기 관리’다. 비가 오는 날에도 실내훈련을 하지 않는다. 그라운드에서 뛰고 달린다. 끊임없는 반복이다. 게으른 모습이 보이면 외국인선수라도 가차없이 2군행이다.

 김성근의 ‘장인(匠人) 리더십’. 특출한 선수가 없는 SK가 페넌트레이스에서 100일 넘게 1위를 뺏기지 않고 우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리더십 전문가인 ‘나우코칭’ 김범진 대표는 “완벽이라는 목표를 향해, 타협하지 않는 수도승 같은 김 감독의 모습은 최고 명품을 만드는 장인의 이미지”라며 “작고 섬세한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치밀함이 장인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기교가 아닌 기술’을, ‘지름길이 아닌 정도(正道)’를 택한다.

 SK는 포수 박경완과 외야수 이진영을 제외하곤 주전 대부분이 2진급 선수였으나 겨울철 지옥훈련을 통해 강한 체력과 기술을 겸비, 최강팀으로 변신했다. 개인 타이틀 홀더 한 명 없이도 팀 홈런 1위, 팀 평균자책점 1위를 이끈 것도 한 명의 스타에 의존하기보다는 전체의 능력과 조직력을 극대화한 김성근 리더십의 결과다.

 장인의 길은 외롭다. 희생을 요구한다. 김 감독도 세상의 칭찬과는 거리가 멀다. ‘재미없는 야구’ ‘고교 야구’라는 비아냥에도 익숙한 그다. 그의 지론은 ‘이기는 야구’다. 공 한 개마다 상대를 분석하고 빈 틈을 노리는 치밀함도 이 때문에 나왔다. 그래서 훈련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지난해 제주캠프에서 “나한테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변명은 약한 자나 하는 거다. 이겨내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며 쓰러지는 선수에게 가혹하게 대했다. 매일 밤 선수들과 함께 ‘왜 야구를 하는지’ 토론했다. 선수에게 리포트를 쓰게 했다. 그도 매일 새벽 두세 시까지 다른 팀 분석에 공을 들였다.

 김 감독 역시 달라졌다. 김 감독은 올해 투수·타격·트레이닝 코치로 일본인 코치 3명을 영입했다. ‘나를 따르라’는 식의 야구에서 이만수 수석코치와 일본 코치들에게 역할과 기회를 나눠주는 분업의 야구로 바뀐 것이다.

 “배우기 위해 머리 숙이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 내가 최고라고 고집 피우다 잘못 가르쳐서는 안 되지 않느냐.”

김종문 기자

◆김성근 감독은

-1942년 12월 13일 일본 교토 출생

-가쓰라고교-동아대-교통부-기업은행서 선수 생활

-68년 마산상고(현 용마고) 감독 부임 뒤 충암고·신일고 감독

-OB 코치(82년)-OB 감독(84년)-태평양 감독(89년)-삼성 감독(91년)-쌍방울 감독(96년)-LG 감독(2001년)-일본 지바롯데 코치(2006년)-SK 감독(2007년)

-가족=부인 오효순(61) 여사와 1남2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