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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기념탑서 영접 행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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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02면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2~4일 방북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동선은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의 김대중 대통령과는 많이 다르다. 육로를 통해 평양에 들어가고, 남포까지 보폭을 넓힌다. 방문 장소도 차이가 난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언제 어떻게 모습을 드러낼지는 베일에 싸여 있다. 경호 등과 맞물린 북한식 의전 때문이다. 두 정상의 동선을 들여다보면 이번 정상회담의 지향점을 읽을 수 있다. 남북 정상의 2박3일 일정을 좇아본다.

미리 보는 정상회담 2박3일

10월 2일 (첫째날)
오전 청와대 본관 앞.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에게 출발 인사를 한 뒤 전용 승용차에 오른다. 청와대 인근의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선 특별·일반 수행원, 기자단 등 300여 명이 탄 버스가 출발한다. 광화문을 떠난 노 대통령은 차를 잠시 세우고 연도의 환영 인파와 악수를 나누기도 한다. 도라산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합류한 노 대통령과 방북 인사들은 비무장지대(DMZ)에 도착한다. 노 대통령은 걸어서 군사분계선(MDL)을 넘는다. 5분 남짓한 시간. 분단 이후 남한 대통령이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는 역사적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노 대통령은 평화의 염원을 담은 메시지도 밝힐 계획이다. 개성공단 입구 북측 CIQ에 들어설 때는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들이 버스로 출근하는 시각이다. 노 대통령은 이들과 인사를 나눌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어 노 대통령의 전용차량과 공식수행원들이 탄 에쿠스 승용차 7대, 특별수행원 등을 태운 27인승 버스 30대가 만드는 긴 행렬이 개성~평양 고속도로 162㎞를 통과한다.

개성~평양 고속도로는 1992년 김일성 주석의 80회 생일을 기념해 만든 4차로다. 양편의 한적한 농촌 풍경, 향나무로 조성된 중앙분리대, 이따금식 눈에 띄는 자전거 탄 주민들의 모습을 뒤로하며 달리던 차량행렬은 ‘탈춤’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봉산군 서흥휴게소에 들러 휴식을 취한다. 개성을 출발한 지 2시간30분이 지난 정오쯤 노 대통령 일행은 고속도로가 끝나는 평양 통일거리의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앞 광장에 멈춘다.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은 두 명의 여성이 한반도 지도를 마주 들고 있는 모습(높이 30m, 폭 61.5m)의 구조물이다.

2001년 8월 건설됐다. 남측은 혁명열사릉과 금수산기념궁전,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방문을 금지해왔다. 2001년에는 이 기념탑 참관 문제로 남측 민간 대표단 7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북측이 노 대통령 일행을 이곳에서 영접할 경우 그 배경은 분명한 듯하다. 청와대 측은 앞서'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나오기로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나오는 것도 배제하지 못한다. 2000년엔 김 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으로 ‘깜짝 영접’을 했고, 남북의 두 정상이 조선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한 뒤 승용차를 함께 타고 김 전 대통령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했다. 연도에는 40만 명의 평양 시민이 나왔었다. 북측은 환영인파가 1차 회담 때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귀띔했다고 한다.

환영 행사에는 김영남 상임위원장, 최태복 조선노동당 비서 겸 최고인민회의 의장, 조선노동당 김국태·김기남 비서, 김영춘 국방위 부위원장,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등 당·정·군의 최고위 인사들이 총출동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김기남 비서는 2005년 서울을 찾아 국립현충원을 방문한 뒤 노 대통령을 예방, 노 대통령과는 구면인 인물. 김영춘 국방위 부위원장은 2000년 당시 인민군 총참모장이었다.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고위 관계자들이 개성으로 영접 나올 것이란 얘기도 있다. 지난 7월 초 조선노동당 통일전선 사업부 최승철 부부장이 개성 지역을 다녀간 것이 북측의 환영행사 준비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평양에 들어선 노 대통령 일행은 천리마 거리, 개선문, 영생탑을 지나고 금수산기념궁전(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곳) 옆 도로를 지나 대성구역 임흥동에 위치한 백화원 영빈관에 여장을 푼다. 이어 오찬을 하게 된다. 김 위원장이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에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경우 백화원 영빈관으로 노 대통령을 찾을 수 있다. 첫 번째 정상회담(비공식 환담 형식)은 노 대통령이 점심식사를 마친 뒤 이뤄진다. 2000년 정상회담 때는 두 정상이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한 직후 27분간 이어졌다.

노 대통령은 만수대 의사당(국회의사당)으로 가서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방문한다. 김 상임위원장이 북한 헌법상 국가를 대표하기 때문에 의례적 성격이 짙다. 오후 7시부터는 국빈 연회장인 목란관에서 북측 주최의 환영 만찬이 이어진다. 남측 수행단 전원과 북측의 고위인사들, 문화예술계 인사 300여 명이 참석한다. 첫날 밤 노 대통령은 서울에서 가져간 TV 수상기를 통해 남한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10월 3일 (둘째날)
오전 만수대 의사당에서 노 대통령은 한 시간 동안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공식 회담을 할 가능성이 크다. 정해진 일정은 옥류관에서의 오찬, 능라도 5·1경기장에서의 아리랑 공연 관람이다. 평소 아리랑 공연은 오후 8시30분 시작돼 1시간30분가량 진행된다. 아리랑 공연은 북한 체제 선전이 주제다. 민감한 내용을 수정했다고 하지만 김 위원장은 박수를 치고 노 대통령은 어정쩡한 자세로 있는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북측은 김 위원장이 공연을 함께 볼지에 대해선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다만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2005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방북했을 때 김 위원장이 함께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어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 위원장과 노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두 차례 정도 열릴 것으로 보이지만 시간은 확정되지 않았다. 1차 때는 오찬 뒤 김정일 위원장이 초대소를 찾아 오후 3시부터 2시간20분간 회담을 하고 40여 분간 휴회한 뒤 45분간 속개해 남측 답례 만찬 직전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회담에는 남측에선 백종천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실장과 김만복 국정원장 등이, 북측에선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배석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 입심이 간단치 않은 데다 장광설이어서 회담 뒷얘기는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오후 7시. 노 대통령이 인민문화궁전에서 북측 인사들을 초청해 답례 만찬을 베푼다. 만찬 분위기는 앞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어떤 합의를 도출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1차 때는 김 위원장과 김 전 대통령이 오후 9시49분 중앙 무대로 올라가 '우리 두 사람이 공동선언에 완전히 합의했다'고 팔을 번쩍 드는 장면을 연출했고 이어 연회의 흥이 올랐다. 김 위원장은 당시 1번 테이블에 앉아 있던 군 간부들에게 “김 대통령에게 술잔을 권하라”고 지시해 군 인사들이 줄을 지어 김 전 대통령에게 술잔을 권하기도 했다. 남측은 공식 건배주로 부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사용됐던 ‘천년약속’을 선정했다. 상차림은 ‘팔도 대장금 요리’를 주제로 각 지방을 대표하는 음식들로 차려진다.

10월 4일 (셋째날)
노 대통령의 마지막 날 일정은 7년 전에 비해 길고 다양하다. 오전 일찍 평양에서 남포로 이어진 청년영웅고속도로(44㎞)를 달려 남포의 서해 갑문과 남북 합작공장인 평화자동차 공장을 시찰한다. 남한 대통령으로선 첫 방문이다. 역시 김 위원장의 동행 여부가 주목되는 행사다. 서해갑문 등은 북측이 참관을 권유한 곳. 86년 김일성 주석과 건설 당시 공사 책임자였던 김정일 위원장의 업적물이다.

대동강 홍수조절, 항만 개발을 위해 만들었다. 후이량위 중국 부총리도 지난 7월 이곳을 찾았다. 평양으로 돌아온 일행은 김 국방위원장 주최 오찬과 식수 행사, 환송행사를 끝으로 평양을 떠난다. 노 대통령은 귀경길에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방문한다. 남측은 일찌감치 단독 행사라고 밝혔다. 개성 방문 역시 김 위원장의 깜짝 동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은 4일 오후 2박3일의 방북 결과를 국민에게 보고하는 행사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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